7인의 첩보 전문가 사전에 테헤란 잠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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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발로 끝난 이란 억류 미 인질 구출 작전인 『라이스·볼』(밥공기) 특공 작전(80년 4월 25일)이 개시되기 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주변에는 중년이 넘은 듯한 핸섬한 신사 한 명이 가끔 나타나 서성거리며 대사관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대사관의 담벼락이며 쇠사슬로 묶어 닫혀 있는 정문을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는가 하면 졸고 있는 무장회교도에 접근해 보기도 했다. 또 그는 가끔 사막으로 자동차를 몰고 나가 보기도 하고 걸어서 테헤란 거리를 다녀 보기도 했다. 이 신사는 아일랜드 액센트의 영어를 구사하는 비즈니스맨이 분명했다. 그가 묵고 있던 아리아 셰러턴호텔 숙박부에는 유럽의 한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아일랜드인 「리처드·H·케이드」로 올라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특수 임무를 띠고 미 CIA로부터 파견된 「에스콰이어」라는 암호명을 가진 특수 공작원이었다.
본명 「리처드·J·메도즈」, 나이 47세, 그린베레 출신 퇴역 중령, 군 경력 30년의 베테랑.
「메도즈」는 인질 구출 특공 작전이 개시되기 전 이란에 침투한 최소한 7명의 선발대 공작원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그의 임무는 대사관 담벼락을 조사해서 침투할 지점을 찾아내고 부비트랩을 찾아내는 등 최후 공격을 위한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새로 밝혀진 내용을 간추려 보면 ▲특공 작전 개시 4일 전까지 대사관 인질들이 어디에 감금되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채 준비가 진행됐었고▲작전 개시 2일 전 비밀 도피 장소가 이란관리들에게 발견되어 공작원들이 고심했으며▲「카터」 대통령이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라고 했지만 특공 작전에 참가한 사람들은 작전이 순조롭게 수행됐더라도 수백 명의 이란인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예상했고▲작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헬리콥터의 테헤란 시내 착륙의 사전 연습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들이다.
특공 대장 「베퀴드」 대령이나 「메도즈」는 79년 11월 4일 미 대사관이 점거 당한 직후부터 인질 구출 특공 작적에 개입했다. 「베퀴드」대장은 댈터라는 이름의 테러진압 특수부대 지휘관이었고 「메도즈」는 77년 전역했지만 델터 부대의 특별 고문이었다. 「베퀴드」 대장은 인질사건이 터지자 그의 부대원들에게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 있는 그들의 기지로 돌아 올 것을 명령했다.
「메도즈」와 델터 부대의 참모였던 「루이스·버러즈」 대위는 이란인들이 인질들을 죽이기 시작할 경우 취할 비상 구출 계획을 세우도록 워싱턴에 파견됐다.
첫 번째 계획은 40명이 참가하는 소규모 특공 작전이었다. 「베퀴드」는 이 계획을 보고 『바보스러운 것』이라고 코웃음쳤다. 그리고 「데이비드·존즈」 합참의장에게 성공 가능성 『제로』라고 보고했다. 「존즈」 합참의장은 인질 구출 작전의 총 책임자였다.
델터 부대의 인질 구출 작전에는 두 가지 장애 요소가 있었다. 첫째가 델터 부대의 훈련은 외국정부가 테러를 진압해 달라는 요청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특공 작전에 투입되면 직접 전투를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인질들이 27에이커나 되는 넓은 대사관 구내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14동이나 되는 건물을 뒤지려면 3∼4시간이나 걸릴 것이 예상되는데 이러한 시간 지연은 치명적인 것이다.
그래서 「베퀴드」 대장은 누군가 테헤란에 들어가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않으면 특공 작전은 곤란하다고 했다.
미 CIA는 테헤란을 떠나면서 요원을 남겨놓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다. 1명의 요원이 있었는데 그는 인질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방에 흩어져 있는 현지인 협조자들조차도 접촉이 불가능했다.
첫 번째 CIA 요원이 테헤란에 도착한 것은 12월말이었다. 「봅」이라 알려진 은퇴 정보장교였다. 「봅」은 정보를 수집하고 활동이 정지된 지방 정보망을 재가동 시켰다. 그는 몇 주일동안 이란 안에서 활동하다 아테네와 로마로 나와 보고를 하고는 다시 이란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봅」은 얼마 후 부유한 이란인 C1A 요원과 합류했는데 그는 CIA에 찾아와 스스로 공작 임무를 제안한 사람이었다. 그는 「베퀴드」 대장의 특공 작전을 위한 지상 임무를 시작했다.
그는 5대의 영제 포드 트럭과 2대의 미즈다 밴 트럭을 구입했다. 이들 차량들은 특공 대원들을 사막 2지점으로부터 테헤란 시내로 운반할 차량들이었다.
특공 작전 3일전 인질로 잡혀 있던 파키스탄인 요리사가 석방됐다. 이 요리사가 출국 때 탑승한 비행기의 옆자리에 우연히 CIA 요원이 앉게 돼 인질들의 감금 위치와 경비 병력의 배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베퀴드」 대장은 자기 부하가 테헤란에 잠입해 들어가지 않으면 구출 작전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메드즈」의 테헤란 파견이 CIA에 의해 승인됐다. 「메도즈」는 트럭을 숨겨둔 창고를 방문했다. 거사 이틀 전에 창고를 빌려주었던 이란인이 겁을 집어먹고 이란을 떠났다.
4월의 둘째 주 CIA의 비행기 한 대가 사막의 한 착륙 지점을 정찰하기 위해 이란으로 날아갔다. 모든 활동은 소련의 정찰위성 통과시간을 피해 조정됐다. 그러나 이런 사전 준비에도 불구하고 사막의 작전은 사고로 실패했다. 특공 대원들은 「메도즈」와 그의 대원들을 남겨둔 채 C 130기에 탑승, 이란을 철수했다.
「메도즈」는 탈출의 세 가지 선택이 있었을 뿐이었다. 육로로 터키 국경이나 페르시아만의 아바단으로 가던지, 아니면 테헤란 국제공항을 통해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부하들과 함께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간여객기로 터키 수도 앙카라까지 무사히 탈출했다.

<뉴스위크 7월 1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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