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올케를 막상 맞게 되자 "며느리 시집살이" 할까 친정어머님 걱정|이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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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새 올케를 맞게 되었다.
출가 외인이라지만 친정의 작고 큰 일에 마음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딸이고, 그러면서도 탁 터놓고 친정의 일에 매달릴 수도 없는 며느리요, 아내 된 입장에서, 그저 마음 부담만 한 아름 안고 살던 터라, 올케 맞을 날을 구세주 만나는 날 만큼이나 기대하고 바랐던 터였다.
한 아름의 걱정거리를 몽땅 넘겨주어 버리리라는 생각에서, 결혼한지 일년만에 딴 세상으로 가버린 큰아드님 생각으로 쓰린 눈물을 적셔오던 부모님의 무너진 가슴이 조금쯤 메워질 수 있으리라는 갸륵한(?) 생각에서.
그러나 막상 혼삿날을 정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니 마음이 착잡하고 눌리는 듯 가슴은 답답해지기만 한다.
내 어머님은 유난히 정이 많으시다.
설움도 그만큼 많이 타신다.
그런 어머님이 과연 요즈음 흔히 말하는 「며느리 시집살이」를 잘 살아 나가실까. 오히려 한 아름의 근심이 더 안겨질 것만 같은 걱정 때문인 것 같다.
『엄마,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두 번 이상은 하지 말아요. 잔소리가 돼요.』
『엄마, 늙어질수록 몸을 깨끗이 가꾸세요. 주접스러워 뵈지 않게.』
『이렇게 하면 요즘 젊은이들 좋아하지 않아요. 저렇게 하면 새 사람이 부담스러워 해요….』
올케 들어올 날을 앞두고 출가한 두 딸이 열심히 어머니를 교육(?)시키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인다.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해지고 교육 수준은 날로 높아가는데 고부간의 갈등은 점점 심각해져만 가니 참으로 이상하다.
우리가 결혼한지 5년만에 나의 시어머님은 돌아가셨다. 아직 젊으신 시아버님을 생각해 새 어머님을 모셔다 놓고는 심란해 하던 남편이 짐짓 명랑한 체 수다스러워지는 나를 보며, 『하기는 여자들이야 친어머니나 새 어머니나 다를 게 없겠지. 어차피 시어머니란 남의 어머니이니까.』
비꼬듯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시어머님이 어떻게 남의 어머니일수 있을까. 내 가장 소중한 남편을, 사랑스러운 자식을, 또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분인 것을.
그래서 시어머님의 슬픔은 곧 며느리의 슬픔일 수 있고, 며느리의 기쁨은 곧 시어머님의 기쁨일수 있는, 어찌 보면 같은 운명을 지닌 가장 가까운 관계가 고부간이 아니겠는가.
친정의 새 기틀을 엮어 나갈 올케를 맞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소중한 남편을 있게 해준 시부모님을, 사랑스러운 내 자식과 가문을 위해 평생을 바칠 귀한 며느리를,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감싸며 위로하는 고부간이 되어 지기를. 그리하여 부모님의 여생에 한숨이 없으시기를. <서울 관악구 신림 1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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