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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볼수 있게 된 거장의 예술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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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세계 조각사의 한 거봉이자 금세기 미술계의 마지막 거장인 헨리·무어 옹의 조각초대전이 7월1일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된다. 호암미술관 개관기념으로 열리는 이 전시회에는 무어 옹 자신이 직접 선정한 1930년대부터 최근작에 이르는 1백36점(조각 52, 드로잉 24, 판화 60)의 걸작들이 선보인다. 국내 미술문화 발전에 하나의 전기를 이룰 이 조각초대전을 계기로 헨리·무어의 인간됨과 예술을 좌담으로 엮어본다. <편집자주>
세계 조각사의 한 거봉이자 금세기 미술계의 마지막 거장인 헨리·무어 옹의 조각초대전이 드디어 7월l일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막을 올린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지역에서 두번째로 열리게 된 이번 작품전을 계기로 헨리·무어에 관한 간담회를 꾸며봤다.
이경성=최근 우리 나라에서는 국제수준급 전람화가 많이 열리고있어 고무적인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KBS와 MBC가 각각 주최했던 피카소전이라든가, 서울미술관에서 기획한 오늘의 유럽작가전등이 그 좋은 예지요. 이제 우리 나라도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에 금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꼽히는 헨리·무어의 작품전이 열리게돼 미술계는 물론, 모든 애호가들을 흥분시키고 있읍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전이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게 된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헨리·무어를 직접 만나셨던 김 선생께서 얘기를 좀 해주시죠.
김정숙=지난1월 한국여류조각회의 파리전 관계로 유럽을 가게됐지요. 영국문화원장으로 있는 닥터 바가 주선을 해주어 무어 옹을 만날 수 있었읍니다.
그분은 런던에서 북쪽으로 48㎞ 떨어진 머치해덤의 페리그린에서 살고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 군데군데서 빛을 발하는 조각품들… 정말 벌려진 입을 다물기가 어렵더군요. 무어 옹의 첫인상은 위대한 작가라기보다는 우리네 이웃할아버지 같은 친근감이 들었읍니다. 허리가 아파서 잘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스스로를 『네발로 걷는 사람』이라고 조크하더군요.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손을 놓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갔을 때도 외손녀를 위한 에칭작품(『호랑이』) 스케치를 하고 계시더군요.
이=엄 선생께서도 헨리·무어를 만난 적이 있으시죠.
엄태정=런던왕립미술학교 유학시절 가까이 할 기회가 있었어요. 작품에 매료돼 그분을 만났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그분의 인간됨에 더 큰 감명을 받았읍니다.
헨리·무어의 아버지는 광부였다고 하더군요. 후에 부지배인이 됐다고 하니까 어려운 집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헨리·무어의 천부적 재능을 가장 일찍 발견하고 용기를 주었던 사람은 그래머스쿨의 미술교사인 미스 고스틱으로 알려졌읍니다.
무어 자신이 조각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11세 때부터라고 해요. 그후 런던왕립미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은 다음 영국의 아방가르드로서 활동을 해나갔어요.
그는 28년에 런던 와렌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지만 정작 국제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48년 베네치아·빈에서 조각부문 국제상을 수상하고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읍니다.
이=이제 헨리·무어의 작품은 전세계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영국미술이 세계미술에 등장한 것은 19세기후반에서 20세기초로 비교적 현대미술의 출발이 늦은 셈이죠.
영국미술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데는 평론가 허버트·리드의 공이 지대한데 헨리·무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지요.
그의 작품을 놓고 추상이냐, 구상이냐 하고 가른다면 단연 구상의 범주에 집어넣게 됩니다. 가족상·모자상 등이 좋은 예지요.
영국사람들은 전통적이어서 갑작스런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읍니다. 그러나 구멍을 뚫어 빛을 넣는 등 전통적인 조각의 볼륨을 파괴한 시도 등은 역시 헨리·무어를 위대한 작가로 느끼게 합니다.
엄=허버트·리드와의 만남이 시작된 것은 31년 영국 레스터화랑에서 열린 제2회 개인전부터라고 합니다. 이때가 그의 작품이 자연주의적 볼륨과 매스롤 바탕으로 한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변화를 시작한 때지요.
2회전을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허버트·리드는 헨리·무어의 스폰서라고 불릴 만큼 적극적으로 그와 작품에 이론적 뒷받침을 해주었지요.
헨리·무어의 이전 작품을 구심력적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후의 작품은 공간성이 오픈된 원심력적인 형태로 추상영역으로까지 확대시켰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그는 순수추상은 너무 차갑고 지성적이라 감동을 주지 못한다하여 싫어했으며 유기체적 생명력(Organic Vitality)을 지닌 것을 추가했읍니다.
최근작품이 추상이라 해도 유기적 확산에 포인트를 두고 펼쳐나가고 있어요.
원래의 와상의 형태가 아직도 완성 못했다는 차원에서 계속 작품해가는 과정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확실히 영국미술은 생물학적, 즉 식물이 뻗어나가는 것 같은 특성을 지닙니다.
헨리·무어도 초기에는 개체작업을 하다가 50년대에 들어서면서 환경조각을 추구해갔지요. 그의 작품이 야외조각으로 호평을 받는 것도 바로 환경을 고려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김=페리그린에 가보니까 언덕에 돌로 만든 거대한 작품이 놓여있더군요. 바로 그 곳을 위해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이=이 작가의 가치는 조각예술을 획기적으로 환경예술로 끌어올렸다는데 있읍니다. 건축과의 관계를 고려, 조각이 통솔하는 종합예술로 승격시켰다는 것―바로 도시개발학자나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생활을 조형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봅니다.
김=확실히 헨리·무어는 위대한 작가입니다. 조각사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미켈란젤로→로댕→브랑쿠시→마이욜을 잇는 조각산맥의 거봉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세계 25개국에서 70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조각작품이 9백점, 드로잉·스케치·판화만도 5천여점을 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읍니다.
그분은 제게 『예술엔 늙는 게 없다』면서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해가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고 강조하셨읍니다.
이=소련과 중공을 제외하고 세계각국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한마디로 말해 헨리·무어의 작품이 없으면 문화적 후진국을 면하기 어렵지요.
이번에 호암미술관에서 헨리·무어 작품 2점을 구입한다고 하니 이제 문화국가의 체면이 서는 것 같습니다.
엄=이번 전시에는 초기에서 현재에 이르는 조각 52점과 그의 작품제작과정을 알려주는 드로잉·그래픽 등도 함께 출품된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2년 전 헨리·무어의 한국전이 계획되고있다는 얘길 들었을 때 과연 열릴 수 있을까하고 의아심을 가졌었지요.
이런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앉아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몹시 흥분되는 일입니다. 미술인 뿐 아니라 전국민에게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이=이번 헨리·무어전을 계기로 국제사회 속에서의 한국미술로 발돋움할 수 있었으면 좋겠읍니다.
김=우리 작품이 해외에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중있는 전시회가 국내에 소개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등 여러 미술기관에서도 이런 면에 관심을 기울여 적어도 1년에 한번이라도 이런 수준의 전람회가 열리기 바랍니다.

<좌담회>
▲이경성(미술평론가·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숙(조각가·홍익대미대 교수)
▲엄태정(조작가·서울대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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