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위기 부른 「분업」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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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의료공백」의 위기까지 예상되는 의·약 분업파동은 쉽사리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사부와 약사회 회장단간의 담판 끝에 26일부터 단행키로 한 약국휴업결의는 일단 보류키로 합의했으나 약사회산하 일부 시·도 지부와 분회장들의 강경자세로 「휴업보류」는 26일 상오현재 서울 등 일부 시·도에서는 사실상 무산된 상태.
약국휴업결의에서 휴업보류 합의·부분휴업 강행에 이르기까지의 분쟁의 시말을 알아본다.

<휴업보류 합의>
약사회의 26일 전국「일제휴업」결의가 「일단보류」로 뒤집힌 것은 25일 하오7시를 지나서였다.
김정례 보사부장관과 약사회 회장단 3인(부회장)이 보사부장관실에서 가진 담판에서 절충이 이루어졌기 때문. 김 장관의 설득과 회유에 약사회 회장단은 ▲전국휴업을 6월말까지 일단 보류하고 ▲약사회와 의사회가 각각 보사부와 상대방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의약분업의 대안을 마련, 협의를 다시 하도록 한다는 2개항의 합의각서에 서명을 했다.

<설득작업>
7시20분쯤 서울 관철동 약사회관에 돌아온 약사회 회장단은 긴급 지부장회의를 소집, 23∼24일 이틀동안 계속된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차 상경했다가 아직 돌아가지 않은 5명의 지방 시·도 지부장과 회장단이 회동한 지부장회의는 l시간여의 논란 끝에 장관과의 「신사협정」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사무국은 9시쯤부터 전국 각 시·도 지부에 이같은 결정을 전화로 긴급통보하고 회원들이 차질없이 26일엔 문을 열도록 당부하느라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서울시약사회 반발>
그러나 축소 시·도 지부장회의의 결정은 서울시지부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회장단은 시·도 지부장회의가 끝난 밤10시부터 별도 분회장회의를 열어, 지부장회의의 결정을 설명하고,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그동안 해오던 얘기를 되풀이한 것에 불과한 보사부의 약속을 믿고 대의원총회의 휴업결의를 지부장회의에서 번복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등 반발이 거세게 일어 12시가 넘도록 갑론을박. 회의장에선 『당신들이 대표냐』 『당신이 보사부장관 하시오』 『단 한나절만이라도 문을 닫아야한다』는 등 회장단을 성토하는 고성이 터져나왔고 회의장밖에는 일부회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비분강개하는 격앙된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워낙 험악하자 회장단은 9시40분쯤 각 시·도 지부로 보내고있던 휴업보류 전통을 중지하는 등 우왕좌왕. 10시30분쯤에는 김정례 장관이 김명섭 서울시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간곡히 회원설득을 당부하기도 했다.

<국무회의 보고>
김정례 보사부장관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2시30분 의약분업문제와 관련, 기자회견을 자청, 『보사부의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임의분업 강행의 의사를 거듭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약사들이 전국적인 휴업을 벌일 경우 어떤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계속 약사회측과 접촉을 갖고 설득을 벌이고 있으므로 잘될 것으로 믿는다』고 시종 낙관을 표시, 여운을 남겼다.
김 장관은 하오4시 신임 김상협 총리주재의 첫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를 보고했으며 대부분 각료들의 의견은 『보사부의 지침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것』이라고 보사부의 입장을 이해했다는 것.

<1차 담판>
국무회의를 마치고 5시쯤 보사부에 돌아온 김 장관은 2시부터 연락을 받고 와 면담을 대기중이던 한명승·송창진·김장숙씨 등 3명의 약사회 부회장과 마지막 담판을 시작. 약사회의 황원성 회장은 대의원총회의 전국일제휴업결의를 반대, 사의를 표명하고 25일부터 출근하지 않아 이날은 5명의 부회장가운데 3명이 대표로 나왔다.
김 장관은 한번 결정된 정부의 시책을 시행도 하기 전에 바꿀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약국이 문을 닫게되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내세워 끈질기게 설득하는 한편 비록 임의분업이긴 하지만 행정지도를 통해 의사들이 적극 처방전을 떼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약사회측은 강제성의 보장이 없는 한 격앙된 회원들을 무마할 방법이 없다고 강제분업의 확약을 요구했다.

<보사부 비상>
김 장관의 설득담판이 진행되고있는 동안 김병수 보사부차관은 관계국장들과 약사파업에 대비한 대책강구에 바빴다.
이날하오 각 석간신문 2판에 일제히 약사회의 휴업을 알리는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광고가 나가자 보사부는 아연 긴장된 움직임. 김 차관은 김 장관이 마지막 설득작업을 펴고 있지만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관계국장들에게 대책을 지시. 하오6시30분쯤 의정국은 전국 보건소와 의료기관이 약사파업에 대비, 24시간 비상근무를 하도록 각시·도에 긴급지시했으며 약정국은 약사회에 일제휴업을 재고하도록 경고를 시달. 경고는 파업이 현행약사법상 위법으로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와 함께 이날 하오부터는 각시·도를 통해 지역약사회와 일선약국에 휴업을 하지 말도록 강력한 압력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회 통보>
26일 일제휴업이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졌던 상황이 급변한 것은 하오7시쯤 2시간여의 끈질긴 설득 끝에 김 장관의 6월말까지 보류-재협의 제의를 약사회측이 받아들인 것. 김 장관은 급히 공보관을 불러 7시15분쯤 각 보도기관에 휴업보류사실을 통보하도록 했으나 이미 지방배달판이 나온 뒤였다.
김 장관의 설득이 주효했던 것은 약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모종의 언질」이 주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낳았으나 양쪽이 모두『언질은 없었다』고 단언. 약사회 대표들은 이 때문에 시·도 지부장회의에서 『구체적 약속이 없는 이따위 합의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공박에 몰렸다.
이에 대해 대표들은 『장관이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우리는 국민이 아니냐』고 반문, 설득담판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정작 문을 닫을 경우 동정을 받아야할 여론으로부터 오히려 비난을 받을 우려도 있다는 집행부로서의 전술적인 계산도 작용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약사회측의 설득에 일단 성공한 보사부는 하오8시쯤 약사회와의 약속대로 대한의학협회에 이 문제를 다시 협의하기 위해 26일상오 보사부를 방문해주도록 통보했다.

<안보장관회의>
한편 약사파업문제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안보장관회의가 하오8시 진급 소집됐다. 김상협 총리서리 주재로 9시부터 열린 회의는 김 보사장관의 보고를 듣고 보사부의 당초방침대로 추진하되 약사들과 의사들을 설득, 협의를 갖도록 하고 약사들의 휴업은 철회하도록 촉구키로 논의됐다는 것. 10시쯤 보사부로 돌아온 김 장관은 비상대기중이던 김병수 차관, 이두호 기획관리실장, 김영기 사회보험국장, 이창기 약무시품국장, 이성우 의정국장 등 간부들과 회의를 가졌다.

<2차 면담>
간부회의가 끝난 뒤 12시30분쯤 약사회대표들이 다시 초치됐다. 그때까지 서울시약사회의 회장단 성토가 계속되는 가운데 약사회 집행부는 40분간의 구수회의 끝에 26일 1시10분쯤 보사부로 떠났다. 김장숙 부회장대신 서울시약사회장 김명섭씨가 낀 3인부회장단은 1시간여동안 안보장관회의의 결과를 듣고 1차면담에서의 철회방침을 재확인했다. 김명섭 회장이 보사부에 불려가는 바람에 12시30분쯤 서울시분회장회의는 결론없이 산회. 2시30분쯤 본부에 돌아온 집행부는 지방시·도와 서울시 17개 분회를 상대로 휴업철회 재통보작업을 개시했다. 그러나 강경자세를 굽히지 않은 회원들은 회장단의 설득에도 불구, 26일 일부지역에서 문을 열지 않은 혼란을 빚은 것.

<약사회 자중지란>
서울시내 17개 분회회원을 중심한 약사들은 집행부의 합의가 명분없는 양보라고 성토, 설득에 응하지 않고 있어 약사회는 자중지란의 인상. 회원들은 『불과 4∼5일의 시한을 남겨두고 어떻게 납득할만한 합의가 이루어지겠느냐』며 협의재개결과에 회의적. 『신문에 대문짝만한 광고를 내고 몇시간만에 회장단이 멋대로 철회합의를 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불신임의 움직임마저 보이고있어 분규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약사들은 『지금까지 약사들이 너무 정부정책에 순응하기만 해 이처럼 궁지에까지 몰렸다』고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임수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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