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각의 낙원-페리그린작업장을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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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조각의 거장「헨리·무어」옹을 찾아 런던에서 북쪽으로 48 떨어진 머치해덤의 페리 그린을 처음 방문한 사람은 왼쪽 양지바른 평지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17세기 고풍의 벽이 하얀 집과 그 오른 쪽 덤불 사이에 보이는 온실 같은 현대식 건물 중 어느 쪽을 먼저 노크해야 할지 으레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왼쪽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에 이사온 뒤 계속 살고 있는 노대가의 집이고 그 오른쪽 온실 같은 구조물은 사무실들이 들어선「헨리·무어」재단 건물인데 그 건물 앞을 서성거리면 으레 흰머리에 굵은 테 안경을 낀 여비서 「틴슬리 」할머니가 나와 『무엇을 도와줄까요?』하면서 반가이 맞이한다.
그녀를 따라 재단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온실같이 판유리로 덮인 넓은 공간이 있고 방문객은 대개 이곳에서 「무어」옹을 만나게 된다.
응접실을 겸한 이 「온실」에서 내다보이는 후원의 경관은 정면 입구 쪽에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탁 트인 넓은 물에 여러 가지 수목이 아름답고, 왼쪽으로 오솔길을 이루며 들어선 사과나무 숲길과 덤불 담 너머로 한가롭게 오가는 양떼들이 특히 눈에 뛴다.
온실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오솔길을 지나 다시 후원 안쪽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시야에 들어서는 넓은 공간 이곳 저곳에 자리잡은 거대한 야외용 브론즈작품들의 위용에 압도돼 버린다. 이 넓은 잔디밭 여러 곳에 흩어져 자리잡은 「무어」의 8개의 스튜디오(제일 오랜 스튜디오는 살림 채와 재단 건물사이에 있다) 가 시야에 들어온다.
물론 제2후원이라 불리는 이 공간의 경계를 넘어 한. 쪽에는 덤불 담이 높게 둘러선 잔디밭 저 끝에 「두 개의 거대한 형체」의 원형이 보이는 제3후원, 그 오른편에 자리 잡은 제4후원의 드넓은 잔디밭에는「양」을 모델로 한 거대한 브론즈 작품과 그 그늘에서 쉬는 양떼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조각의 낙원은 넓게 정돈된 후원들에서 그치지 않고 그 뒤로, 좌우로 다시 거대한 호수를 가운데 두고 펼쳐진 2백 만평 가량의 광활한 땅이 모두「헨리·무어」재단 소유다 그리고 이곳에는 앞으로 「무어」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들을 전시할 야외 조각공원 설치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모든 방문객이 궁금해하는 작업장들은 크게 기능별로 나누어 작가가 조각의 첫 단계 작업을 하는 마케트 (maquette=석고에 의한 스케치 또는 작은 조각모형)스튜디오가 두 군데 있고, 마케트를 워킹 모델(실물 크기의 석고모형)로 만드는 스튜디오가 2개소, 그리고 이 워킹 모델을 야외용 실제크기로 확대 제작하는 대형 워킹모델 스튜디오가 2개소, 다시 브론즈로 떠온 작품들의 마감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 1개소에 목조석조 작품들을 보관하는 스튜디오가 1개소. 이렇게 기능별로 조각작업을 하는 스튜디오들이 제2후원에 자리 잡고 있는 한편「무어」의 판화 및 드로잉작업을 위한 그래픽 스튜디오가 따로 있다.
그뿐 아니라 방문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재단 직원들마저 퇴근한 조용한 밤 시간에 작가 홀로 그날에 못다 한 작품을 계속하거나, 주조(cast)가 끝난 브론즈 작품들의 마지막 손질을 하는 「무어」만의 은밀한 작업장 (제l 스튜디오) 이 따로 있어 그날 방문객들에게 빼앗 긴 시간을 보충하며 「매일 10시간 작업」의 철칙을 홀로 지키고 있는 노대가의 엄숙한 모습은 참다운 예술가의 표상 바로 그것이었다.
「무어」의 마케트 작업은 그가 새롭게 시도한 제각기 법이다. 이제까지 「무어」는 드로잉을 바탕으로 석조작업에 들어갔었는데 37년부터는 이를 바꾸어 주조를 위한 소형조각을 석고로 제작해두는 새 방법을 도입하는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대형 야외용 조각 제작에는 이와 같은 석고작업이 너무 오래 걸리고 비경제적인 방법이어서 지금은 야외용 대규모 마게트 제작은 석고대신 스틸로포움을 이용하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 손쉽게 초대형 마케트를 제작해내는 획기적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마케트 작업과 이것의 확대 및 마감작업을 돕기 위해 현재 「핸리· 무어」재단에는 세 사람의 조각 조수가 있어 일을 돕고 있다. <유근준 서울대 미대교수·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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