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적신 들녘과 숲…화폭이 숨 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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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카미유 코로가 1865~70년경 제작한 유화 ‘데이지 따는 여자들’. 밝고 어두운 빛의 강한 대비, 햇빛의 변화에 따른 색의 반짝임 등 인상파의 등장을 예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동네 이발소 벽 장식부터 텔레비전 광고까지, 그가 남긴 그림은 가장 흔하게 소비되는 이미지다. 들판에서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농부 부부의 모습을 담은 '만종', 허리를 굽혀 일하는 사람으로 노동의 고귀함을 표현한'이삭 줍는 여자들'은 또한 서구 회화사에서 손꼽는 유명한 작품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1814~75)는 싸구려 복제화와 이발소 그림으로 우리에게 친숙하고 친절한 화가가 되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은 한국인에게 낯익은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한번 즐길 수 있는 전시다.

2002년 12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였던'밀레의 여정'전에 이어'땅의 아들'밀레가 한국을 찾았다. 그와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노래한 코로.루소.도비니.트루아용.디아즈.뒤프레 등 31명 화가의 작품 106점이 여름 더위를 잊게 한다.

바르비종은 농부화가였던 밀레를 위대한 근대 화가로 거듭나게 한 곳이다. 밀레는 서른 살 무렵에 파리에서 남쪽으로 60㎞쯤 떨어진 퐁텐블로 숲 속 작은 마을 바르비종으로 옮겨간 뒤 주변에 모인 동료 화가와 함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그 풍광을 섬세한 관찰력으로 그렸다. 바르비종 화파의 탄생이다.

바르비종파는 정직한 노동으로 땀흘리는 농민, 자연에 대한 감동과 믿음, 노동자의 질박함을 사실주의로 묘사했다. 특히 밀레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장엄한 지평선은 하늘과 땅을 가르는 자연의 기호로서 보는 이의 마음을 단정하고 엄숙하게 해준다.

밀레가 본 농촌은 19세기 말 산업사회로 접어드는 프랑스에서 뒤로 밀리던 자연의 상징이었다. 소설가 에밀 졸라가 묘사했던 엄밀한 과학적 사실주의로서의 자연주의와는 다른 관점을 지닌 자연주의다. 여기서 자연이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이면 누구나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대자연의 품을 가리킨다. 밀레는 자연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화가다. 밀레의 그림이 왜 누구에게나 편하고 쉽게 다가가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한마디를 그는 남겼다.

"스스로 대단히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퐁텐블로 숲 속을 걸어 보라. 키 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햇빛조차 제대로 비춰들지 않는 풍경 속에서 그는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힘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월 28일까지. 02-368-1616.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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