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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성령운동」의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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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주여, 믿습니다. 성령을 주시옵소서.』 『평생 영적생활을 하게 하소서. 불순종을 용서하소서.』
흔히 울부짖음과 통곡, 요란한 손뼉소리, 소리 높여 합창하는 할렐루야 노래 등이 불을 뿜는 일부교회의 신흥성령운동에서 거듭 반복되는 목사와 신자들의 간구다.
부흥회와 함께 최근 20년동안 한국교회를 급성장시킨 2대요인의 하나인 「성령운동」을 연구하기 위해 서울영등포 S교회의 예배를 관찰했던 신학자 서광선 박사(전 이대교수·신학)의 참관기 가운데 한 구절―.
『소리,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물려왔고 예배당 안은 기도의 열기에 곧 성령이 혀같이 불같이 떨어질 것 같은 긴박감을 주었다.
옆자리의 한 부인은 영어의 L, R ,M자가 엉클어져 나오는 듯한 소리로 방언을 계속했다. 나는 혹시 이 부인이 정신을 잃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 예배분위기는 마치 성령을 달라고 떼쓰는 것 같았다.』
그는 이어 이같은 신흥성령운동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합심참회기도」의 순간에 느꼈던 착잡한 감동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나는 양쪽 여인들에게 손을 꼭 잡힌 채 「예수사랑」을 열창하면서 울었다. 가난하고 고민하고 괴로운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갈구하며 한 맺힌 기도로 울부짖는 그 아우성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민중의 종교를 오용하고 착취하는 악마들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예수사랑」을 노래하며 손잡고 모여선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감동이었을까. 저주와 감사가 뒤섞인 것 같은 착잡한 느낌이었다.』
기독교인이면 아무도 오순절 날에 일어났던 『불의 혀같이 갈라져 임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됐다』(사도행전 2장1∼13절)는 성령강림과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신앙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기독인들은 『성령이란 우리와 세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재이며 권능이며 사랑』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은사를 간구한다.
문제는 오늘의 일부 한국교회 성령운동이 올바른 성서적 이해를 결여한 샤머니즘으로 경고받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김균진교수(연세대)는 『성령운동을 통한 기독교신앙이 개인의 인격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하느님의 새로운 세계를 불러일으키는 창조적 힘을 상실한 채 방언·치병·예언 등의 신비적 종교현상과 동일시될 때 교회는 하느님의 새 역사를 위한 일꾼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한국전래의 무당들이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일종의 신당이 되고 만다』고 크게 우려한다.
예수부활 50일째 되는 오순절 날의 경이적인 성령강림은 세례「요한」과 사도「바울」에 따르면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발견하게 하며, 인간의 눈과 마음이 예수에게로 열리게 하는 것이 그 근본활동이다.
성령은 다시 「바울」에 의해 사귐과 자유 회망을 선사하고 「누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예언자적으로 선포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은사로 이해한다. (「에드워드·슈바이처」저 『성령』)
성서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는 ▲지혜 ▲지식 ▲신유 ▲믿음 ▲방언 ▲권능 ▲예언 ▲통역 ▲영 분별 등 9가지로 요약된다.
일부 한국교회의 신흥성령운동은 성령의 역사와 권능을 강조, 극적 방언과 병을 고치는 신유능력에 치중하는 현상을 보이고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종의 권능운동이 된 성령운동은 권세없고 힘없는 민중들에게 큰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
또 방언과 치병의 기적 속에서 자유분방한 예배를 이끄는 성령운동은 교회의 유교적인 격식화와 관료화돼 가는 폐쇄적인 교회기구 및 구조로부터 해방되려는 몸부림이라는 분석도 있다.
성령운동가들은 성령강림의 약속과 사건은 어디까지나 성서적이며 방언, 기도의 병 고침 같은 성령의 특별역사를 허용하지 않는 교회는 분명히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올레미디어 화이두브란 더 슈이바…, 이화슈 조화 츄활리…, 레센두 아크 하트물례스…, 다이신다요 노노이도히도노끼다요….』
이광수 목사의 연세대 석사학위논문에 조사돼있는 각 유형의 방언 예이다.
방언을 뜻하는 영어의 「Glossolalia」는 희랍어 「??????」(혀)와 「??????」(말하다)에 어원을 두고있다. 예수 부활후의 오순절집회에 모인 회중들이 성령을 받아 각자의 출생지 방언으로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고 말하게 됐다는데서 비롯된 방언의 기적은 원시종교에서도 있던 현상인데 기독교는 이 집회에서 처음 나타났다.
방언의 기적을 남은 고린도 교회의 개척자 사도「바울」은 『내가 교회서 방언으로 1만마디 말하는 것보다 내 이성으로 다섯마디 말을 하여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다』면서 『방언하는 자는 정신이상자로 간주되기 쉽다』고 경계하기도 했다.
방언과 치병의 기이한 은사로 압축되는 일부 한국교회 성령운동은 이제 『영은 이 세계를 올바르게 생각하도록 할 것이며 과연 무엇이 죄이고 법인지, 과연 무엇이 심판인지를 완전히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세레「요한」의 말을 되새겨봐야 할것 같다.
손상오 신부(대구 칠곡성당)는 『오늘의 성령운동은 유별난 극적 현상의 특은이 아니라 진실과 의로움, 관대함과 온유함 같은 참으로 고귀하고 공동체에 유익한 성령의 은사가 이 사회 안에 주어지기를 기원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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