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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시진핑의 절묘한 표정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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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시진핑(習近平)은 노골적이었다. 그는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기다리게 했다. 두 정상은 악수를 했다. 아베가 인사말을 했다. 시진핑은 들은 체하지 않았다. 시선을 돌렸다. 끝내 상대방과 눈을 맞추지 않았다.

 시진핑의 표정 언어는 절정에 이른다. 아베의 미소는 어색하게 사라졌다.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접견실. 중국 국가주석과 일본 총리의 만남 모습이다. APEC 정상회의 별도 무대에서다.

 상황은 1분도 안 된다. 짧지만 함축은 깊었다. 시 주석의 외모는 중후하다. 그 때문에 그의 인색한 기색은 강렬하다. 거친 말보다 자극적이다. 회담장에서도 그는 아베 총리를 압박했다. 그는 “중·일 관계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한 시비곡직(是非曲直·옳고 그름)은 뚜렷하다(淸楚)”고 했다. 양국 역사·영토 갈등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주장이다.

 얼굴 연기는 외교적 시위다. 시진핑은 왜 그랬을까. 그것은 중·일 외교 드라마의 특별한 장면이다. 지난 주말 양국 참모들은 분쟁 해법을 마련했다. 대결에서 협력으로의 변화다. 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기습적인 반전이다. 한국은 허(虛)를 찔렸다. 회담의 화해 분위기가 예상됐다.

 그 순간 시진핑은 재(再)반전을 모색했다. 그는 예측을 깼다. 표정과 의전으로 아베를 푸대접했다. 주최국 중국은 양국 국기를 걸지 않았다. 시진핑의 표정 메시지는 간결하다. 일본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만났다는 것이다. 중국은 두 정상 회동을 응약회견(應約會見)으로 규정했다.

 표정의 전달 대상은 여러 군데다. 중국 내 반일 감정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한국도 의식했을 것이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분석은 흥미롭다. “그 표정은 다목적이다. 아베와의 회담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안함을 드러내려는 측면이 있다.” 서진영은 중국 정치의 대가다.

 지난 7월 한·중 정상회담 때다. 시진핑은 2015년 8·15 광복행사(중국 항일승전) 공동 주최 문제를 꺼냈다. 그는 “노량해전에서 명나라 등자룡(鄧子龍)과 이순신 장군이 함께 순직했다”(서울대 강연)고 했다. 그것은 역사 공조 다짐으로 비춰졌다. 그 바탕으로 일본을 압박하자는 것이다.

 그 4개월 뒤 중국은 선회했다. 일본과 긴장완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아베와의 회동이 이어졌다. 시진핑은 한·중 역사 동맹에서 이탈했다.

 중국은 그 중대 변화를 감추려 한다. 이를 위해 극적 장치를 동원했다. 시진핑의 표정 언어는 절묘한 포장술이다. 그의 못마땅한 모습은 주효했다. 한국의 대다수 정책 관계자들은 “중·일 관계의 급진전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평가절하가 시진핑의 노림수다. 그는 한국을 친중·반일로 묶어두려 한다. 시진핑 외교는 원숙미를 풍긴다.

 일본의 반응은 교묘하다. 시 주석의 태도는 외교 무례(無禮)다. 아베 총리는 모욕을 당했다. 하지만 일본은 절제로 대응했다. 관방 부(副)장관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는 “시주석이 매우 자연스럽게 대응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일본 주류 언론의 기조도 비슷하다. 일본은 변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동북아 신(新)삼국지는 미묘하다. 새로운 격랑이 일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그 추동력은 양국 4개 항 합의문서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양제츠(楊潔<7BEA>·양결지)의 작품이다. 둘은 양국의 책사(策士)다.

 센카쿠(尖閣) 항목은 애매하다. 그 섬은 중국 댜오위다오(釣魚島)다. 양측은 절충했다. 그곳 분쟁에 대한 다른 견해(異なる見解)와 다른 주장(不同主張)을 서로 인정했다. 동상이몽의 해석이 불가피하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도 유사하다.

 그런 모호함은 외교의 미학이다. 강대국들이 쟁점의 현상(status quo)을 깰 때 쓰는 방식이다. 외교 언어는 직설을 경계한다. 중·일의 타협은 실리 때문이다. 명분보다 국익을 우선했다. 중국은 군사력 의존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했다. 일본은 역사 도발의 인상에서 탈피하려 한다. 양측 모두 경제를 중시한다.

한국은 독자 외교 전략을 다듬어야 한다. FTA 타결로 중국과 긴밀해졌다. 하지만 역사 공조는 한계를 갖는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국 고대사 왜곡이다. 시진핑-아베 회동은 한국엔 기회 상실이다. 한국 외교는 중·일 간 갈등 중재의 기회를 잃었다. 중국이 한·일 관계 알선의 주도권을 잡았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박 대통령의 외교 야망이다. 그 국책 실천의 조건이 있다. 한·일 정상회담을 우회해선 불가능하다. 동북아 질서의 유동성은 높다. 원칙은 외교에서도 아름답다. 원칙은 탄력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원칙외교는 그때 더욱 빛난다.

박보균 대기자
[AP=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