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의 부동산 맥짚기] 강남권 집 수요·공급 계산도 안 해본 당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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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

최근 정부가 전·월세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전셋값이 잡히기는 커녕 사정은 더 악화될 분위기다. 앞으로 몇 년간은 아파트 재건축으로 부서지는 주택이 새로 짓는 집보다 많기 때문이다. 재건축 대상은 서울 강남권(강동·송파·강남·서초구)에서만 50여 단지 8만8000여 가구에 달한다. 목동·상계동을 비롯한 다른 곳까지 치면 서울에서만 15만 가구가 넘을 듯싶다.

 먼저 재건축이 잇따라 진행되고 있는 강남권의 수급 상황을 보자. 강남권 재건축 예정 단지에 들어설 아파트 신축 물량은 현재 건축기준으로 볼 때 13만5000가구로 추산된다. 기존 주택수가 8만8000가구이니 4만7000가구가 더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사업은 추진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므로 2019년까지는 새로 짓는 집보다 철거되는 숫자가 많아 오히려 집이 모자란다. 한 부동산컨설팅업체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부터 2019년까지 연간 1만~3만8천 가구 정도 부족했다가 2020년에 가서야 2만여 가구가 남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른 변수를 보지 않고 순전히 강남권 재건축으로 인한 수급 내용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아파트 철거로 인한 이주자가 강남권에서만 살 집을 찾는다면 전·월세 대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위례신도시에서 2017년부터 2년여 간에 걸쳐 4만3000여 가구의 완공 주택이 쏟아진다.하지만 같은 기간 강남권의 부족분 9만8000가구와 비교하면 5만5000가구가 적다. 이 시기에 보금자리주택·주거용 오피스텔·다세대주택 준공 물량도 있으나 부족분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수급 상황을 국토부와 서울시는 따져봤을까. 두 기관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런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더욱이 서울시는 주택난의 진원지인데도 이렇다 할 대안 하나 못내놓고 있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주택문제 총 책임자인 주택정책실장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서울시가 내 놓을 수 있는 것은 사업 인허가 시기를 조정하는 정도 아니겠나. 끗발 하나만 있으면 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 방안도 여러번 써 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인허가 사안도 평소에 연도별로 상세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효과가 생긴다. 무분별한 인허가 제한은 오히려 관련 업체와 조합의 피해만 키울 뿐이다.

 사실 전세파동은 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급이 안맞아서 벌어지는 것이다. 전세 수요는 자꾸 느는데 전셋집은 줄어들어서다. 임대수익을 얻으려고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사람까지 많아지고 있으니 걱정이다. 이런 흐름은 벌써부터 감지됐었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게 전세파동의 화근이 됐다.

 LH·SH공사와 같은 주택관련 공기업을 임대주택만 짓는 회사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정 급하면 임대수요를 구매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획기적인 세제및 금융 혜택 방안을 먼저 한시적으로 운용해보면 어떨까. 대출이자가 월세보다 적게 나오면 집을 살게 아닌가.

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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