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아르헨 군정 |3인 군사평의회 어떻게 버틸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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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포트 스탠리에서 영국군에 백기를 든 지 3일만에 「갈티에리」대통령이 퇴진의 압력에 못 이겨 사임함으로써 포클랜드에서 시작된 패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붸노스아이레스 까지 드리워지고 있다. 포트 스탠리 함락소식이 전해진 후 대통령 궁 앞「5월의 광장」에서 국민들의 분노의 함성소리가 매일 터져 나오고 최고통치기구인 군사평의회가 그를 외면하자 결국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갈티에리」대통령으로 하여금 사임을 결심케 한 결정적인 계기는 사임성명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육군지휘관들의 지지철회.
17일 사단장 급을 비롯한 10여명의 육군 고위장성들이 비상회의를 열고 「갈티에리」육군사령관에게 「휴전」(그들의 표현)을 받아들일 것과 퇴임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 같은 사실은 곧 군부의 계속적인 권력장악을 위해 「갈티에리」대통령에게 희생양이 되어 달라고 압력을 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군부의 계속집권, 이것은 현 붸노스아이레스의 최고지도자들과 군부의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지난 15일에 있었던 야당지도자들의 모임은 「갈티에리」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6년간의 군정을 끝낼 것을 요구했고 급진당의「라울·알폰신」당수는 『이제 변화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단정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야당 쪽 뿐만 아니라 군부·노조 쪽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포스트·갈티에리」를 누가 맡느냐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민간인이 현 군정체제에 참여, 군민합동 평의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조심스런 전망을 하고 있지만 쉽게 군부가 이를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설령 군부가 궁여지책으로 이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실권은 주지 않고 상징적인 존재로만 유지시킬 가능성이 크다.
「갈티에리」의 후계자로서는 현재 육군사령관직을 이어받은 붸노스아이레스 주둔 제1군단장인「크리스티노·니콜라이데스」장군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서방외교관들은 포클랜드전쟁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니클라이데스」장군이 지나칠 정도로 권위주의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재야세력을 선두로 들끓는 국내여론에 못 이겨 어느 정도의 제한된 민주화를 받아들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70년대 후반 반 정부인사 탄압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니콜라이데스」장군은 지난15세기 이후 서방세계는 공산주의에 잠식당해왔다고 말할 정도로 강력한 반공주의자.
은발에 거구인 그는 2년 전 제3군단장으로 재직할 당시 일부 정치인들을 정부정책을 비관한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 악평을 자아내기도 했다.
올해 57세로 그리스 계 혈통인「니클라이뎨스」장군은 이번 포클랜드전쟁기간 중 수도권지역의 1군단장 직을 맡고 있었으나 전쟁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은 때문인지 계속 침묵을 지켜왔다.
그는 지난 76년 아르헨티나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이사벨·페론」전 대통령정부를 무너뜨리고 전권을 장악한 이후 4번째로 육군사령관이 됐다.
현재 공군사령관이며 3인 군사평의회의 위원인 「라미·도소」장군도 후계자로 유력하다.
그의 공군은 포클랜드전쟁에서 영국함대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으며 따라서「라미·도소」장군은 일시적이나마 국민적 영웅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약점은 탱크와 소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끊이지 않는다면 의외로 군정체제가 무너지거나 또 다른 쿠데타를 유발할 수도 있다.
포클랜드전쟁의 패전과 함께 경제생활의 파탄은 국민들의 가장 큰불만이 되고있다.
포클랜드전쟁을 통하여 아르헨티나가 가장 큰 곤혹을 느낀 것은 바로 외교문제다.
가장 믿을만한 동맹국이던 미국이 적국인 영국 쪽으로 붙었고 유럽 각국들은 물론 같은 대륙의 일부 남미 국가들조차 아르헨티나를 돕는데 주저했다.
이 같은 경험에서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의 외교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미국일변도의 동맹정책을 약간 후퇴시키고 라틴 아메리카 우선과 비동맹정책이 고개를 들 것이다.
전쟁 중에도 몇 차례 나왔지만 공산권과도 필요하다면 손을 잡을 외교정책방향을 강구할 듯 하다. 벌써 아르헨티나는 포틀랜드 전쟁으로 손실된 공군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소련으로부터 미그전투기 1백대를 구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친소로의 방향전환은 경제계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사실상 힘들 것 같다.
이 같은 「포스트·갈티에리」시대의 산적한 난제는 누가 후계자가 되든지 고통을 호되게 당할 전망이다.
우선 3인 군사평의회에서 지명되는 신임대통령은 포틀랜드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관련, 영국과의 적대관계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외교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된다.
패전후의 분위기로 봐서는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 76년 3월 쿠데타이래 손발이 묶여있는 야당세력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것이다.
「라미·도소」장군의 말대로 오는 7월 정당의 활동재개를 허용하는 새로운 법령이 나오고 헌법개정작업이 착수된다면 포틀랜드 전쟁의 패전결과는 경직됐던 붸노스아이레스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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