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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적 버리고 팔레스타인 사람 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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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가자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수를 반대하는 이스라엘인들이 18일 남부 네티보트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입과 손을 묶고 있는 오렌지색 끈은 철수반대 운동을 상징한다. [네티보트 AP=연합]

"차라리 이스라엘 국적을 포기하고 팔레스타인인이 되겠다."

유대인이 불구대천의 원수인 팔레스타인 사람이 되겠다고 나섰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가자지구 엘레이 시나이 정착촌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아비 파르한(59)은 18일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범시민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추진 중인 정착촌 철수에 반대해 '철수' 대신 차라리 '국적 변경'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유대인 가운데 팔레스타인과 가까운 아랍계 유태인들 사이에 팔레스타인 귀화자가 늘고 있다.

8월 중순으로 예정된 가자지구 철수를 둘러싸고 이스라엘 국론은 분열돼 있다. 상당수 정착민들은 텐트를 치고서라도 끝까지 정착촌을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팔레스타인의 모든 영토는 역사적. 종교적으로 합법적인 이스라엘의 땅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일부 과격파들은 경찰과 충돌을 불사하며 철수반대 시위를 위해 가자지구로 몰려들고 있다.

리비아 태생의 아랍계 유대인인 파르한의 삶을 보면 그의 이번 결정을 이해할 만하다. 파르한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당시 3살의 나이로 부모와 함께 이스라엘로 옮겨왔다. 상당 기간 난민촌에 거주한 후 가자지구 북부에서 어려운 생활을 했다. 67년 이스라엘이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점령한 직후 반도의 야미트 정착촌을 건설해 이주했다. 하지만 82년 이스라엘의 시나이반도 반환으로 다시 가자지구로 돌아왔다. "나는 이제 늙었다. 다시 난민이 될 힘도 용기도 없다. 조용히 머물고 싶을 뿐"이라는 심정이다. 파르한의 친척 7가족도 그를 따르겠다고 나섰다. 그의 아들 요시 베레비는 "이스라엘이 나를 포기한다면 나는 이스라엘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유대인은 크게 유럽출신 아슈케나지와 남유럽.중동 출신 스파르디로 나뉜다. 시오니즘에 따라 유럽서 찾아온 아슈케나지와 달리 스파르디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어느 정도 어우러져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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