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52. 코미디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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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지금도 친딸처럼 지내는 배연정(右)씨와 TBC 코미디 프로에 함께 출연한 필자.

'비실비실 배삼룡'하면 꼭 따라오는 말이 있다. 바로 '땅딸이 이기동'이다. '배삼룡과 이기동'을 묶어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비쩍 마른 몸매의 나와 키가 작고 뚱뚱한 몸매의 이기동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한창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기동씨와 나는 차이가 꽤 나는 선후배 사이다.

당시 인기를 끌던 유명 코미디언들은 십중팔구 유랑극단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기동 씨는 달랐다. 그는 군예대가 아닌 정식 군인 출신이었다. 그것도 육군 장교로 제대했다. 그가 연예계 문을 두드린 것은 제대한 후였다. 군대에서도 깨나 끼가 발동했던 모양이었다.

처음 방송국에서 만났을 때 그는 무명이었다. "선생님, 선생님"하며 쭈뼛쭈뼛 코미디 연기에 대해 물어보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장교 출신답게 머리가 좋았고, 재치도 있었다. 발 붙이기 쉽지 않은 연예계에서 전혀 다른 배경을 갖고도 성공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놀라울 만치 검소했다. 동료들은 농담 삼아 '짠돌이'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은 연예인에겐 계획적인 씀씀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어서 은근히 부럽기도 했었다.

서영춘씨는 TBC-TV 개국과 함께 톱스타의 자리를 굳혔다. 그는 걸출한 슬랩스틱 코미디언이었다. 특유의 코맹맹이 목소리로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로 시작하는 노래 '서울구경'을 유행시켰다. 그는 참 붙임성이 좋았다. 세련되고 사근사근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를 만나도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게 그의 탁월한 능력이었다. 나와도 '형.아우' 하는 사이였다. 연기 스타일은 나와 확연히 달랐다. 나는 무뚝뚝하고 말없이 웃기는 바보 스타일이었고, 그는 끊임없이 관객의 옆구리를 찔러 웃음을 끌어내는 재담꾼 스타일이었다.

송해씨도 빼놓을 수 없는 친구다. 지금도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맡으며 방방곡곡을 누비는 그는 무명 시절부터 알던 사이다. 코미디언 박시명씨와 송해씨는 내가 신혼 살림을 차린 필동의 셋방 시절부터 우리집을 드나들었다. 그는 경기도 변두리 극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다 통금에 걸렸다며 밤 늦게 대문을 두드리기도 하는 사이였다. 그때는 한푼이라도 여관비를 아껴야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친딸처럼 지내는 코미디언도 적지 않았다. 배연정씨와 고인이 된 최용순씨다. 그들은 우리집을 자기집으로 알고 드나들었다. 그만큼 나를 따랐다. 최용순씨는 출생지를 대라면 우리집 주소를 대고, 아버지를 대라면 내 이름을 댈 정도였다. 배연정씨는 평소에는 물론이고 명절이면 반드시 우리집을 찾는다.

또 카바레에서 노래를 하다가 코미디언의 길로 접어든 김나미씨와 카바레 MC로 일하다 코미디언이 된 홍해씨는 둘 다 자식 같은 제자들이다. 그들을 알게 된지도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 지금도 주말이 되면 "식사하러 오세요"라며 전화벨이 끊이질 않는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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