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알맹이 나와야…" 청와대 회담에 걸린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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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임박한 청와대 영수회담은 제5공화국 들어 가장 본격적인 정치무대가 될 전망이다. 이·장 부부사건으로 빚어진 난국수습이란 당초의 목표는 물론,「민주화개혁」등 야당 측이 요구하는·정치본질문제가 다뤄질 전망이어서 적어도 정국에 무슨 새바람이 불 계기가 되리라는 추측이 많다. 그런 만큼 회담에 임하는 각 당의 준비나 자세도 전례 없이 신중하다.
영수회담의 성과가 시국수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민정당은 회담성공을 위한 대책마련에 골몰.
한 당직자는 『청와대회담이 성과 없이 끝날 경우 난국의 책임을 정부와 함께 몽땅 지게된다』고 민정당 측의 처지를 걱정하면서 『회담성과가 「추상적 표현」으로만 끝나지 않고 손에 잡히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고층을 토로.
지난주 의원총회와 국회상임위 소속별 의원간담회에서△추가인책△주변정리△경제정책전환△정치스타일의 변화 등 백화제방 식으로 「의견」은 무성했지만 막상 부러지게 내놓은 당론이라고는 아직 없다.
권익현 사무총장은 『개각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인책 말이 나오기 무섭게 고개를 저었고 다른 당직자들도 『당내의견이 곧 당론은 아니다』라고 언급을 삼가는 눈치.
지난 일요일(6일) 권 총장과 이종찬 총무가 청와대를 다녀온 후 특히 당직자들의 언동은 신중해졌는데 『대통령의 재량을 민정당이 제한하는 듯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직자들의 풀이.
그러나 이미 이 대표위원이 일찌감치 개항의 시국수습책을 건의한 바 있고 「여려 경로를 통해 당의 의견이 보고되고 있는」형편이어서 당직자들은 국민과 야당 측을 납득시킬만한 「상식적인」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민정당은 우선 야당 측이 제기할 것으로 보이는 「예상문제」를 추려 당으로서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예상문제가 장관인책문제처럼 당 차원에서는 방침을 정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라는데 민정당의 고심이 있는 듯.
한 간부는 『인책문제는 오히려 당이 건의한 바도 있지만 정치규제 자 해금이니 지방자치제니 하는 문제는 당이 사전지침 없이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고 털어놓으면서 고위층에 차원 높은 정치적 구상이 있지 않겠는가고 기대.
따라서 표면상 민정당이 마련중인 대책이라면 당면 경제정책의 대안 정도인데 한 소식통은 야당이 요구하는 정치관계법 중 일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관측.
이번 영수회담의 사실상 주역을 자처하는 민한당의 유치송 총재는 당 내외로부터 의견을 수집, 청와대에 들고 갈 보따리마련에 바쁘다.
이미 유옥우 부총재·임종기 총무, 허경만·김원기·손세일의원 등이 주동이 되어 골격을 다듬고 있으며 여기에 윤보선 전 대통령을 비롯한 재야인사들의 의견도 추가시켜 대충 면담보따리를 싸놓고 있다.
유 총재는 당내 지도층보다는 「신비주류」의 소리에 특히 신경을 써 지난 8일 신상우·고재청 씨 등 전 당직자들과 김준섭 전당대회 의장·오홍석 중앙상의 의장 등과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정치활동 피 규제 자들과는 직접 만날 생각은 없으나 측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이들의 생각과 의견도 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대학교수·노동계 대표·종교계 인사 등 비 정계인사들의 의견도 들을 예정.
이밖에 당 안팎에서 많은 의견이 밀려들고도 있다는데 유총재 자택과 당 총재실에는 요즘 연일 의견을 개진하려는 내객으로 붐비고 있고 심지어 인천의 봉모씨는 공영토건어음을 샀다가 퇴직금 2천만 원을 날렸다면서 소액피해자 구제대책을 협의해 달라고 진정.
유 총재는 최근 의제정리작업을 하고 있는 임종기 총무와 이윤기 정책연구실장에게 『상세한 내용은 그만두고 제목만 죽 메모하라』고 지시해 이미 예상되는 의제에 대한 속생각은 굳히고 있다는 인상.
그 동안 총합된 의제들을 보면 이미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추가인책 △언론·국회활성화 △장 여인 사건 규명과 배후관계 및 자금행방 △정치활동 피 규제 자 해금 등 20여가지가 넣는다는 것.
당내 대다수의 의원들은 경제문제와 장여인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상 청와대회담에서 더 이상 나올 수 있는 구체적 사항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 이번 기회에 정치활성화를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조성에 주력해 줄 것을 기대하고있다.
거론방법도 그저 막연하게「국회활성화」라고 할게 아니라 국회활성화를 위해 국회법을 개정하고 야당의 의정활동내용이 충실히 국민들에게 전달되도록 한다는 등 구체적인 문제를 갖고 대화를 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당내의견을 종합하고 있는 한 간부는 뭣 보다 시국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최고지도자들이 좁혀 가느냐가 회담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
그는 국민들이 현 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가 우선적으로 얘기돼야 할 것이며 그러한 시국관의 일치에서 출발해야 수습을 위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
국민당은 회담에서 정치발전 문제가 중점 논의될 것에 대비,△다당제의 현실화 문제△국민의 불신풍조 해소와 정부의 신뢰회복 방안△국회활성화에 관한 당의 입장을 장리해 놓고있다.
실무진들은 소속의원들의 국회 대 정부질문에서 나타난 주장과 이만섭 부총재의 기자회견 내용을 중심으로 안을 만들었다.
헌법은 다당제를 규정하고 있지만 1구2인 제의 국회의원선거법으로 인해 사실상 다당제의 정신이 구현되지 않고 있는 모순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 국민의 불신이 심화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초당적 위치에 서야하며 본격적으로 제도의 모순을 제거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경기활성화대책을 위한 몇 가지 제의도 담고 있는데 김종철 총재가 이를 모두 전할지는 알 수 없다.
김 총재는 회담자체를 『장 여인사건의 「해결」보다는 「망각」을 위한 행사』라고 얘기하고 있고 회담에서의 얘기도 그날 사정에 따라 하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국민당은 회담교섭 과정에서 민한당으로부터 받은 「섭섭한 대접」을 어떤 형태로든 만회해야겠다는 듯 준비과정에서부터 민한당을 크게 의식하고 있다.

<전육·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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