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군 월경하면 큰일 |이란-이라크전과 한국건설사업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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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방언론들이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침략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중동의 장래와 한국경제의 관점에서 볼 때 이보다 더 심각한 변화가 이란-이라크 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다.
2주전 이란 군이 호람샤르를 탈환한 이래 이라크에 진출하고 있는 7개 한국건설 회사들은 이란 군이 이라크국경을 넘어 전쟁을 확대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있다. 이라크 내 한국건설 회사들이 진행하고 있는 10억 달러 이상의 공사 중 거의 50%가 남부전선의 바스라 시와 중부전선의 알아마라 시 부근에 집중돼 있는데 월경작전이 시작될 경우 이 공사들이 중단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런던의 신문들은 월경작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이란 군일선 지휘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란의 「호메이니」도 지난 5월 27일『순전히 군사적 이유로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는 월경작전을 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며칠 사이 그런 위험은 줄어든 것 같다.
첫째, 이란을 적극 지원해 온 시리아가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리아 외상은『만약 이란이 이라크 영토를 침공하면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그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아랍 페르시아 양 민족간의 전통적 적대감을 자극해 전쟁을 장기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현실적 계산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란이 당장 월경작전을 삼간다고 해서 즉각 휴전에 응하리라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라크는 일방적 휴전을 선언하고 15일 안에 모든 군대를 이란 영토로부터 철수하겠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의 호소를 반복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이미 그런 양보를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 는 수수께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당분간 나머지 피 점령지역의 탈환작전을 계속하면서 「월경작전」의 가능성을 위협수단으로 이용할 듯 하다.
이란이 제시하고 있는 휴전조건은 ⓛ이라크군의 전면철수②1천5백억 달러의 전쟁배상지불③ 「침략자」의 처벌④전쟁초기 이란으로 추방된 15만 명의 이라크 내 시아파 신도의 이라크로의 귀환 등으로 요약된다.
이중에서 ①과②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③과④는 이라크의 정권뿐 아니라 정치체제의 변화를 암시하는 요구이기 때문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흐메이니」는 전쟁 초기부터 이라크대통령 「사담·후세인」의 목을 요구했다. 「후세인」이 「호메이니」를 혁명열병의 병균으로 보고 그를 제거하는 것을 전쟁의 묵시적 목표로 삼을 기미가 보이자 「호메이니」는 역으로 「후세인」을 「무신론자사탄(악마)」으로 규정하고 이슬람 혁명으로 그의 비 이슬람적 정권을 갈아치우는 것을 명시적 목표로 내세웠다.
그래서 초기에는 바그다드에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고 이라크의 바드당 지도층 전원을「전범」으로 처단해야된다고 주장했었다.
이 요구가 최근에는 크게 후퇴해서「사담·후세인」대통령만 제거하면 나머지「혁명위원」 들과는 흥정할 의사가 있다고 은근히 암시해왔다.
그러한 암시가 「호메이니」의 태도변화를 나타낸 것인지, 단순한 전술적 편의를 나타낸 것인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지역에 혁명수출을 목표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의도의 복병이 시아파 신도 15만 명의 귀환이라는 ④항의 조건이다.
이라크의 1천3백만 인구는 50%의 시아파, 25%의 수니파(바트당 집권층의 종파),그리고 25%의 쿠르드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아직 단일국가의 구성원으로 영합되지 못한 채 시아파는 남부일대에, 쿠르드족은 북부일대에 살고 있다.
그런 상태로 이란에서 거주해온 15만 명의 시아파 신도들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이라크 쪽에서 보면 오열을 받아들이는 거나 다름없다. 이란은 이 요구 외에도 이미 전쟁초기부터 아랍어 방송을 통해 이라크 내 시아파 교도들을 선동하는 방송을 해왔고 2만 명에 달하는 이라크 전쟁포로들에게도 이슬람 혁명원리를 교육시켰다. 이 때문에 이라크 측은 지금까지 포로교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이란이 심어놓은 복병이 당장 이라크에 이란형의 이슬람혁명을 촉발시키리라고 보는 것은 속단이다. 다만 전쟁이 현재 상태에서 휴전될 경우라도 문제는 없지 않다.
이슬람 혁명의 여파가 폐르시아 협 일대로 번지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일대의 보수정부들은 전쟁의 실수를 청산하는 적절한 선에서 이라크의 현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건설업체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이 방안이 가장 무리가 없다 .그런 선이라면 현재의 정책노선이 큰 변화 없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현 집권세력인 바트당의「혁명위원」전원이 밀려나는 사태가 올 경우 지금까지 소외돼온 세력간의 암투로 내분이 일어날 것이고 그 결과로 이라크의 불안정한 국민구성이 와해될 가능성이 커진다.
련던 타임즈 지에 인용된 중동전문가 「헤이칼」의 말을 빌면 그 위기는 다음과 같이 심각한 잠재성을 안고 있다.
『만약 이라크의 국민적 구성이 와해될 경우 그 여파는 아랍세계의 중추 부에까지 미쳐 종교·사회·민족단위로 분열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런던=장두성 특파원】@@장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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