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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기 KT배 왕위전' 창덕궁 부용정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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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제1보 (1~17)]
黑. 옥득진 2단 白. 이창호 9단

창덕궁 부용정. 조선시대 임금이 쉬던 이 정자는 창덕궁의 후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오랜 세월 인적을 거부하던 이곳이 30여 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두 사람의 절정고수를 맞이했다. 맑은 연못 속으로 구름과 소나무, 그리고 바둑 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고요히 일렁거린다. 한 폭의 동양화다.

6월 20일 오전 10시. 이창호 9단과 옥득진 2단이 정자에 올라 좌정했다.

명예입회인을 맡은 이미경 국회 문광위원장이 대국 개시를 선언하자 흑을 쥔 이 9단이 담담한 모습으로 우상 귀 소목에 첫수를 놓는다. 도전기 첫판을 이겨 센세이션을 일으킨 무명의 신예 옥 2단은 오늘따라 한결 수줍은 표정이다.

검토실로 정해진 영화당에선 1기부터 7기까지 왕위 7연패를 거둔 김인 9단과 한국기원 사무총장인 임선근 9단이 손님들과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열렬한 바둑팬이자 창덕궁의 첫 공식행사로 KT배 왕위전을 기꺼이 맞아준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비춰지는 한가한 풍경과 달리 바둑판 위에선 흑11로 밀어 막 결렬한 정석이 시작되고 있다.

일명 '큰 눈사태형'. 조남철 9단은 일본 측이 붙인 이 정석 이름을 '큰 밀어붙이기'로 바꾸자고 제안한 바 있다.

▶ 참고도

큰 눈사태형은 아주 복잡해 현재도 미완성 정석이다. 끊임없이 새 변화가 나온다. 이세돌 9단은 11로 미는 대신 '참고도'처럼 단순하게 두기를 좋아하는데 이 정석이 끝까지 가면 바둑판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되고 그만큼 자신의 변신 능력이 제한받기 때문일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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