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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 웃다 80年] 51. 월남전 위문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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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70년대 초반에는 월남전이 한창이었다.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청룡부대 등이 파병돼있었다. 학생들은 파월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썼고, TV와 라디오에서도 연일 월남전 소식을 전했다. 연예계도 빠질 수 없었다. 정부는 대규모의 연예인 위문공연단을 꾸렸다. 코미디언과 탤런트, 영화배우, 가수, 무용수들로 꾸려진 꽤 큰 규모의 공연단이 만들어졌다. 나도 거기에 포함돼 있었다.

▶ 월남 위문공연 당시 여자 무용수들(앞줄)과 당시 무명 가수였던 나훈아 씨(왼쪽에서 세번째), 그리고 필자(가운데줄 오른쪽에서 일곱번째)의 모습이 보인다.

월남전에 관한 소문은 흉흉했다. "글쎄, 전후방이 따로 없대" "낮에는 평범한 주민인데 밤에는 베트콩으로 돌변한다는구먼" "언제 어디서 총부리를 들이밀지 모른다잖아." 비록 위문공연이었지만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월남 전역에서 전.후방이 따로 없었다. 전황도 엎치락뒤치락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사이공(현 호치민시)에 도착했다. 베트남의 하늘과 거리에 늘어선 야자수가 무척 아름다왔다. 그러나 그런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였다. 우리는 즉시 군용 트럭으로 옮겨타고 비포장 도로를 따라 부대로 향했다. 위문단은 부대 안에서만 머물렀다. 섣불리 외출을 나갔다가 언제 화를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담당 장교는 "얼마 전에 비 전투 지역 내의 한 극장에서 폭탄이 터졌다"며 "일단 부대 밖으로 나가면 베트콩 공격이 어디서 이뤄질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겁(?)을 줘 부대밖 출입은 엄두도 내질 못했다.

당시 청룡부대는 호이안, 맹호사단은 퀴논, 한국야전군 사령부는 나트랑,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사이공에 있었다. 연예인 위문공연단은 사이공과 나트랑, 다낭 등 큰 도시들을 오가며 공연을 펼쳤다. 이동 수단은 군용 수송 헬리콥터였다. 꽤 먼길이었기 때문에 육로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제 어디서 로켓포 세례를 받을 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군 관계자의 설명이 있었다.

무대는 부대 내 연병장에 마련됐다. 장병들은 기둥을 세워 무대를 만들고 확성기를 설치했다. 밤에는 공연을 올릴 수가 없었다. 따라서 위문 쇼는 대부분 낮에 열렸다.

장병들의 반응은 가히 열광적이었다. 고국에서 날아온 연예인들이 더 없이 반가운 모양이었다. 철모를 벗은 장병들은 여가수와 여자 무용수들에게 끊임없이 '앙코르'를 날렸다. 정말 연병장이 떠나갈 정도였다. 또 고향과 어머니가 등장하는 연극에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전쟁에 지친 몸과 마음. 모두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이 아니라 단순 후송 임무를 띠고 트럭을 타고 가다가도 지뢰나 부비 트랩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전쟁 때 생각이 났다. 육군 군예대에서 전선을 넘나들며 공연을 올렸던 시절과 여러모로 상황이 비슷했다. 다만 그때는 전장이 조국이었고, 지금은 이국땅이란 게 다를 뿐이었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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