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계 「록히드 후유증」으로 신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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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6년 사건이 터진 이래 6년간을 끌면서도 변죽만 울리던 종전후 일본의 최대 정치의혹사건 「록히드」재판은 8일 처음으로 2명의 정치인에 대해 유죄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됐다.
이날 동경지방재판소 형사12부(재판장 신곡일신)의 이른바 「전일공루트」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수탁 수뢰죄의 유죄판결을 받은 전 운수상「하시모또」(교본등미삼낭·81), 전 운수성 정무차관 「사또」(좌등효행·54)현 무소속중의원의원 등 두 피고인은 71년 전일공(사장 당시 야협득치)으로부터 대형제트기의 일본 도입 시기를 늦춰달라는 청탁을 받고 다음해 마루베니(구홍)를 통해 「하시모또」가 5백만엔, 「사또」가 2백만엔을 각각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었다.
록히드 사건은 자금수수 경위에 따라 「고다마」(아왕예사부),「오사노」(소주야뢰치), 전일공, 마루베니 등 4개의 루트로 구분되어 각각 따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동안 「고다마니」「오사노니」전일공(회사원에 대한 재판)등 3개 루트에 대한 판결이 있었으나 모두 위증·외환관리법 위반 등 사건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범죄 사실만을 다루는데 그쳤다.
이에 비해 8일의 재판은 처음으로 록히드 사건 자체의 본질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이날 재판에서 유죄 선고됐다는 것은 마루베니 루트를 통해 5억엔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다나까」(전중각영) 전 수상에 대한 재판의 향방을 점치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피고인측은 첫 공판이래 계속 자금수수 사실을 부인해왔으나 「아라야」(신곡일신)재판장은 판결문에서 검찰조서나 돈을 주었다는 관련자들의 법정증언을 전면적으로 인정했으며 특히 「수상의 범죄」에서 5억엔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 「이또」(이등굉·전 구홍사장실장) 의 증언에 전적으로 신빙성을 인정함으로써 「다나까」전 수상의 뒤통수에 철퇴를 가했다.
그런 만큼 이날의 재판결과는 「다나까」자신이나 그가 이끄는 자민당「다나까」파는 물론 그의 지지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스즈끼」내각, 나아가 자민당과 일본경계 전체에 커다란 충격과 파문을 던지고 있다.
「아라야」재판장은 또 전일공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하시모또」「사또」두 피고인뿐 아니라 「다나까」전 수상이 1천만엔, 「니까이도」(일차당진·현 자민당간사장) 당시 관방장관 5백만엔, 「가또」(가등륙월·현 자민당 전국조직위원장)중의원의원 2백만엔, 「사사끼」(주주목수세) 및 「후꾸나가」(갈영일신)전 자민당의원이 각각 3백만엔씩을 받았다고 판결문에 못박음으로써 자민당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사회·공명·민사·공산 등 야당은 즉각 유죄를 선고받은 「사또」와 돈을 받은 것으로 인정된 「가또」등 두 명의 현 국회의원에 대해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한편 「니까이도」자민당 간사장을 국회에 증인으로 불러내 사건의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고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니까이도」간사장은 「다나까」가 무소속이 된 지금 자민당 안에서 「다나까」파를 대표하는 당내 제2 실력자로 자민당이 만약 그를 증언대에 세우기를 거부할 경우 자민당이 록히드 사건의 책임자를 싸고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게된다.
증인신문에 응하면 자민당의 현직간부를 끌어내 비위사실을 추궁할 수 있고 그가 6·8판결과 다른 증언을 할 경우 위증죄로 고발까지 할 수 있어 야당으로서는 쌍날의 도끼를 잡은 셈이다.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저의도 「사또」나 「가또」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한다는 목적보다 「다나까」전 수상이 내년 초로 예상되는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에 대비해 전례를 남기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헌법이나 국회법은 의원이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의원직을 잃지 않게 되어있어 야당은 의원직 사퇴결의로 국회에서 몰아내자는 속셈이다.
「스즈끼」수상은 뉴욕에서 재판결과를 보고 받고 △의원직 사퇴문제는 본인이 결정할 사항이며 △돈을 받았다고 인정된 소위 「회색고관」에 대한 인사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일단 재판결과에 초연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야당의 요구를 자민당 다수의 힘으로 묵살하는 경우 「스즈끼」수상, 「니까이도」간사장이 국회를 2개월 이상 연장해가며 정치적 결단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참의원 선거제 개혁안이 여야의 6·8재판 공방전에 휩쓸려 유산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자민당은 「스즈끼」내각 총사직·국회해산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쫓길 가능성이 있다.
자민당 안의 움직임도 난기류다.
의원직 사직권고결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자민당이 이를 부결한다는 당 방침을 세우더라도 한쪽에서 찬성표를 던지는 반란표가 나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당내 원로인 「미끼」(삼목무부)「후꾸다」(면전규부)두 전 수상은 최근 신자유구락부의 「다가와」(전천성일) 대표와 은밀히 만나 정치풍토 정화에 관한 의견을 나눈바 있으며 「다나까」파의 금권정치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재판결과를 보고 「다나까」전 수상이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유죄판결을 받고 그 위에 제2인자인 「니까이도」간사장마저 정치생명을 위협받을 경우 현재 1백9명의 의원을 거느리는 「다나까」파가 과연 어느 정도 끝까지 결속을 과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박한 문제는 「다나까」파를 등에 업고 있는 「스즈끼」수상이 과연 지금의 정치적 난국을 무난히 수습하고 오는 11월의 총재선거에서 재선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자민당이 자체방위를 위해서라도 체질개선을 시도할 경우 일본정계는 한차례 개편의 진통을 겪을지도 모른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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