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임질 줄 모르는 내각|정치를 어렵게 만들어|유치송 민한당 총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여야 영수회담을 공식적으로 제의했던 유치송 민한당 총재-.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갖고 영수회담을 제의했으며 회담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가장 역점을 두어 국민의 뜻을 전달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7일 새벽 상도동 자택을 찾았다.
우선 총재가 제의한 영수회담의 실현이 임박하게된데 대해 축하(?)인사부터 했다.
회담도 하기 전에 어떻게 깊숙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인터뷰 자체를 고사했던 유 총재는 자택을 방문한 기자에게 대통령면담 제안의 배경에서부터 말문을 열었다.
『장 여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검찰이 세 차례의 발표와 국회보고를 했지만 국민의 의혹이 풀리기는커녕 가중되기만 했어요. 그 막대한 돈의 행방이며 배후세력에 대해 끝내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국회에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자는 야당의 제안마저 민정당에 의해 거부되고 마니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민심은 점점 더 혼란에 빠져 수습의 길이 어렵게 되고 말았어요. 특히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의혹이 주변까지 비화되는 등 도저히 좌시해선 안되겠다 생각되어 면담을 제의했습니다.』
-우선 대통령을 만나게되면 제1야당의 존재로서 어떤 문제에 가장 역점을 두실 생각입니까.
『물론 시국수습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건이 일어난 데 대한 명백한 책임을 따지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진상을 규명하는 동시에 이룰 바탕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부도」를 해소시켜야 합니다.
정국수습을 위한 가장 첩경은 국민의 신뢰회복이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화가 촉진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국회가 활성화되고 언론자유가 신장되어야 하며 책임정치를 구현해야한다는 나의 주장은 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다.』
당내에서 영수회담의 형식이 단독대좌여야 한다는 주장이 많더라는 얘기에 그의 태도는 상상외로 단호했다.
『내가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은 제1야당의 당수로서 시국수습을 위한 일념에서 한 것이에요. 제3당에 대해 영수회담을 뒷받침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민정당에 대해 같이 참석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민정당은 필요하면 자기당의 총재를 만날 것이고 국민당도 면담을 요청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영수회담이니 단독회담이니 하지만 과거의 몇 차례 전례로 보면 뚜렷한 성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난 건 없지 않습니까. 발표문에는 으레 「정치발전」이니 「정국안정」이니 하는 그럴듯한 어휘가 나열됐지만 영수회담 뒤에는 불신과 의혹의 그림자가 뒤따랐던 적도 있었는데….
『정치인이 그런 걸 두려워한다면 아예 은퇴하는 게 낫지 뭐 하러 정치를 합니까. 의혹과 불신이 걱정되면 처음부터 제의를 안 했을 겁니다. 평소 내가 갖고있던 생각과 우리당의 의견을 이번 기회에 모두 털어놓을 생각입니다.』
-시국수습의 1차적인 책임은 역시 정부와 여당에 있다고 보는 것 아닙니까.
『책임을 질줄 모르는 내각에 대해 우선 유감을 금할 수가 없어요.
그 엄청난 의령사건에 이어 장 여인사건이 터졌는데도 이를 단순한 우발적 사고나 사기사건으로 들리려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꼭 책임을 져야 하는 건데 내각이 안 진다면 결국 그 책임이 누구에게로 돌아갑니까. 뻔한 얘기 아니겠어요.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니까 민심이 이탈하고 정치가 점점 더 어렵게 되는 겁니다.』
우리 나라와 같이 정치적 구심력이 한 군데로 쓸려있는 상황에서는 내각이 방탄조끼의 역할을 자임해야지 진실을 호도하거나 미봉적인 민심수습책을 쓰려다가는 오히려 사건을 확대시킬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화개혁을 추진키 위해서는 민심의 소재를 파악해야하고 시국을 안정시키려면 정치활동 피규제자를 비롯한 모든 인사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회민주주의 신봉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만취(유 총재의 아호)지만 국회가 국정조사권도 발동하지 않고 책임자 인책도 거부한다면 국민들이 국회존립에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그의 기자회견문 내용을 음미해 볼만하다.
그는 현재 민한당이 국회에 제출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지자제법 개정안·언론기본법 개정안 등 일련의 정치의안들이 다 영수회담에서 거론될 「민주화개혁」이란 포괄적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이 문제는 설사 영수회담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제를 돌려 최근 한참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민정당의 당내 민주화문제에 대한 총재의 의견을 물어봤다.『민정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역시 여론의 향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 아니겠어요. 경제계·문화계·교육계 등 각계각층은 물론 서민층과도 끊임없는 대화를 가져 이를 수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민정당은 그렇다하고 그러면 민한당은 어떻습니까.
『우리 당이 언제 당내 민주주의가 안 된 적이 있습니까. 내가 총재로 있지만 나는 아직 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한 일이 한번도 없어요. 당론을 결정하기에 앞서 항상 사전에 간부들이나 당 공식기구를 통해 의견을 모았습니다. 과거 야당에 비해 당내 민주주의가 오히려 과잉상태라는 생각도 들 정도지요.』
-당내 일부에서는 지난번 회견 때 총재자신의 거취에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을 썼어야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정치인이 그 이상 더 어떻게 구체적인 표현을 씁니까. 나도 다 생각이 있어요. 두고 보십시오. 회견 때도 그런 결의가 보이지 않았습니까.』
회견·고흥길 정치부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