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 넘치는『사향』, 현실성은 다소 떨어져|『낙동강애가』는 풍경만 그려 감정표현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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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기회의 균등은 특히 고정된 난의 작품의 선정에서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물론 우수한 작품을 먼저 뽑아야 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몇몇 선수(?)들에게만 지면이 늘 제공되는 불균형을 낳는다.
겨래 시 짓기 운동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기대하는 것이라면 그런 뜻에서 작품이 좀 못 미치더라도 새 얼굴을 내 놓는 쪽이 더 값진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향」은 지금은 잃어져 가거나 잊혀져 가는 시골을 떠올리고 있어서 정감은 담뿍 들어 있으나 현실성은 그만큼 떨어진다. 이를테면<연자매 몰아가고>는 시에서나 쓸 수 있는 환상이지 볼 수 없게 된 지 오랜 것이 아닌가.
「낙동강 애가」는 낙동강이 안고 있는 역사의 상처를 짚어 그 슬픔을 그리고자 했으나 너무 침착하게 풍경 쪽에만 눈을 주고 있어 어째서 슬퍼야 하는지 까닭을 감추고 있다.<목 감기가 한창이다><울먹이는 푸른 낮달>도 무리가 있다. 「마음」은 시라 기 보다 자기에게 다짐하는 애퍼리즘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은 영원한 과제이며 이러한 표현도 시의 한 방법일수는 있다.
「애총」은 어린아이의 무덤을 두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피어 올리고 있다.

<슬픔도 여기 묻으면 따뜻한 피가 돋나니>로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려고 했으나 승화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6월이 오면」은, 6월은 전쟁의 달이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6·25의 아픔을 가슴으로 받으며 6월을 노래했다.<뻐꾸기 피울음 속에 소복한 아카시아>로 6월을 상징한 것은 이 작품의 종장으로는 잘 살렸다.
「한 여름날」은 대체로 말의 감각을 잘 살려서 무리 없이 끌고 나갔으나<「야세」에 다시 태어나 흰옷 입은 천사 되리>는 요령부득이다. 「야세」는 또 무슨 뜻인가?
용언에 너무 자기를 믿다 보면 엉뚱한 실수가 나온다.「빨랫줄」은 단수가 갖는 간결미를 잘 살렸다. 말의 낭비가 없고<한 두름 햇살이 내려 그 위에 모 널리네>는 썩 훌륭하다. 정찬 있기 바란다.
이밖에「비무장지대」는 역시「낙동강애가」「6월이 오면」과 맥이 닿는 이 달의 소재로 우리의 분단의 비극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 마지막 종장은 태연 하려는 뜻이 지나치다.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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