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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 착시현상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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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3일 저녁 8분 만에 서해와 남해에서 전투기 두 대가 잇따라 추락했다. 둘 다 구형 기종이고, 대간첩선 공격 훈련 중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훈련 지역이나 훈련을 주관하는 소속 비행단과 기종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두 대가 동시에 추락한 것은 처음이다.

◆ '구서(驅鼠)' 훈련 중 사고=밤에 해안으로 침투하는 가상 적선을 포착, 해.공군이 연계해 격침시키는 훈련이다. 군에선 이를 토대로 한 실제 대간첩작전을 '구서(쥐잡기) 작전'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가장 난이도가 높은 훈련이다. 해군 함정, 해안 레이더 기지 등에서 가상 적함을 확인해 공군에 좌표를 보내면 전투기가 2.4㎞ 상공에서 1.2㎞까지 급강하해 공격한다.

특히 약 10초간 급강하한 뒤 상승하는 과정에서 전폭기가 가는 방향과 몸이 느끼는 방향이 달라 훈련된 조종사도 착시현상(버티고)을 자주 일으킨다. 게다가 야간투시경(NVG)을 쓰면 해상 목표물을 확인하고 비행방향을 잡는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 공중과 바다를 착각할 수 있다고 공군 관계자가 말했다. 일단 버티고에 들어가면 다른 행동을 할 수 없어 통신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두 전투기는 모두 "표적을 확인했다. 공격하겠다"고 중앙방공통제소(MCRC)에 교신한 직후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 8분 만에 잇따라 추락=공군은 기체 결함, 정비 불량, 조종 착각, 기상 상황 등 여러 가능성을 놓고 분석하고 있다. 공군은 조종 실수 가능성에 "사고 조종사들은 비행 기량이 매우 우수했다"고 했다. 당시 기상도 남해는 양호했다. 서해는 구름이 끼었지만 "표적 확인에 어려움이 없다"는 교신으로 볼 때 문제가 없었다. 공군 일각에선 전투기에 무언가 '돌발 사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조종사들이 위급 상황 때 사용하는 조종석 사출 장치도 쓰지 못하고 추락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의문은 8분 만에 별개 지역에서 같은 내용의 훈련에 투입된 전투기가 잇따라 추락한 점이다. 공군 관계자는 "우리도 당혹스럽다"고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훈련 자체에 심각한 위험 요소가 있는지 밝혀야 할 대목이다.

◆ 전투기 35%가 30년 넘어=추락한 F-4E 팬텀기와 F-5F 제공호는 제작된 지 각각 35년, 22년이 된 기종이다. 통상 공군에선 30년 정도를 전투기 수명으로 본다. 하지만 현재 550여 대의 공군 전술기 중 30년 이상(F-4D/E, F-5A/B 등) 된 것이 35%, 20~30년(F-5F 등) 된 것이 31%다. 20년이 안 된 '신형'은 34%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 오산에서 열린 한.미 공군기 전시 행사에선 한 예비역 미군 조종사가 F-4D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베트남전에서 자신이 조종했던 전투기를 한국 공군이 아직도 운용하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고 한다. 당시 미 예비역 인사들을 수행했던 공군 장교의 얘기다. F-4E와 F-5F는 지난 10년간 12대가 추락했다.

물론 공군은 노후 기종을 대대적인 기체 수리, 부속 교체로 보완하고 있다. 공군은 2008년 F-15K 40대를 도입, 노후 기종을 단계적으로 도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수십조원대의 거액이 필요하다. 기체 노후화는 당분간 한국 공군의 고질병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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