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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 칼럼

의료와 의학연구의 상호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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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간혹 받는 질문이다. "전문의와 의학박사는 어떻게 달라요?"

전문의는 의료의 전문가이고 의학박사는 의학연구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의료는 사람의 질병을 진단.치료.예방하고 재활을 돕는 행위다. 옛날에는 적당한 경험이나 철학을 바탕으로 의료를 행할 수 있었으나 현대의 의료에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이미 만들어진 표준(standard) 진료지침 또는 권장(guideline) 진료지침을 따라야 하며 이를 벗어날 경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진료지침은 잘 행해진 무작위 임상시험, 환자군과 대조군의 비교 연구, 환자에 대한 사례 연구, 전문가들의 의견 등에 의해 정해지며 과학적 근거의 질과 양에 따라 지침에 대한 신뢰 수준도 다르다. 전문의는 이러한 진료지침을 숙지하며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숙련되어야 한다.

의학은 이런 진료지침을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새로이 만들거나 개선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직접적이라 함은 사람으로부터 직접 자료를 얻음을 뜻하고 간접적이라 함은 비록 사람으로부터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관 내 연구, 컴퓨터를 이용한 연구, 동물실험 연구 등을 통해 기초자료를 얻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진료지침은 의학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전문의는 새로 생기거나 변화하는 진료지침을 자신의 진료행위에 반영해야 한다. 또 본인이 획득한 새로운 지견은 다른 의사가 유사한 환자를 진료할 때 도움이 되도록 이를 의료계에 알려야 하는 윤리적 의무가 있다. 그래서 전문의 역시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변하는 지견을 이해하고 비판하며 새로 획득한 지견을 널리 알리는 의학자로서의 소양도 갖추어야 한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바이올린을 잘 연주하는 사람을 전문의에 비유한다면, 바이올린을 잘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남들도 알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의학박사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 사람이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쉽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바이올린 연주를 못하는 생리학자, 물리학자도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 방법을 연구할 수 있듯이 의학연구도 반드시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진 않는다. 실제로 기초의학 연구분야에서는 의사가 아닌 학자들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전문의와 의학박사. 그들의 업무행태 역시 다른 점이 많다. 의료는 의학연구에 비해 기술적인 요소가 강하다. 예리한 분석과 판단 너머에는 숙련된 각종 진단 및 치료 수기가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환자, 보호자, 다른 의료진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이들과 함께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의사소통, 감정조절과 전달,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경영, 나아가서는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리더십 등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사의 기술은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의학자들은 의료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연구실로 가져와 창조적 사고와 논리적 접근, 연구팀 간 조화로운 협력으로 해답을 얻는다.

의료와 의학연구는 상호 의존하면서 그것들을 둘러싼 과학기술과 사회문화적 요소와 함께 발전하게 되어 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우리는 선진의료를 외국에서 급속히 도입했다. 1980년대 의료 수준이 향상되면서 의학연구 기술도 도입하게 되었고 이제는 의학연구 수준도 향상되어 의료의 발전 동력을 우리 스스로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 국제경쟁력으로서의 의료서비스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당연히 의학연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왕규창 서울대 의대 학장

◆약력=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학교실 교수,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