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객명단 "대외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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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철희가 사채시장의 「알·카포네」로 알려진 것은 아직 두 달도 안됐다. 그전까지 그는 이름난 정보통이자 한 때 권력의 핵심에 있던 사회지도층 인사 중 하나였다.
다소 괴팍스럽고 바람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가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가까운 친지들에게 특별히 범죄꾼으로 의심받을 구석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60세의 노총각(?)신세를 청산하고 재력과 미모를 갖춘 장 여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축복해 준 것은 당연했다. 하객 중에는 두 주인공의 환심을 노렸거나 평소 불건전한 거래를 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래저래 얽힌 교분 때문에 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들 부부는 전대미문의 사기행각을 저질렀고 결혼식도 범죄의 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사건의 꺼풀이 벗겨질 때마다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으며 검찰발표는 매번 미진한 구석을 남겼다. 그럴수록 이들과 맺은 모든 인간관계는 배후 또는 비호세력으로 의심받았다.
이규광이 친족대표로 인사하고 구속된 임재수 전 조흥은행장, 변강우 공영토건사장 등이 하객으로 간 사파리클럽 결혼식의 참석자명단이 관심을 끌고 각종 유언비어가 파생한 것은 이해할만하다.
수차의 발표에도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자 검찰은 바로 그 명단을 불신제거의 도구로 쓰려한 듯한 감이 든다. 정치근 법무장관은 지난달 28일 『현역 국회의원 7명이 낀 명단을 국회상위에서 공개하겠다』면서 이가 얼마나 음흉하고 악한이었나를 설명하기 위해 그의 청소년시절 범죄·가족관계·혈액형까지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검찰의 그 같은 방침은 불과 사흘만에 「비공개」로 바뀌었다. 우선 『배후작용과 관련이 없는 다수인사들의 명예룰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번의의 이유였다.
『식언을 하지 말라』는 의원들의 추궁 앞에 법무부는 잠시 명단을 보여주었다가 즉석에서 회수해 가는 촌극을 벌였다.
검찰은 당초 『공익을 위해서』라면 명단공개가 명예훼손죄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형법상의 규정을 근거로 공개를 생각했다가 갑자기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정점이야 어떻든 검찰이 뒤늦게나마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선의의 참석자들의 명예를 보호하려 했다면 굳이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잘못된 방침이 시정됐으니 다행인지 모른다.
다만 엄정한 법 집행을 해야할 검찰이 이·장 부부사건에 관한 한 너무 자주 수사방향과 법리 해석을 변경하지 않느냐는 점에서 느낌은 결코 개운치만은 않다. 바로 이점이 사건의 수습을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자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전 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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