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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에 방조제 279개 … 둑 허무는 역간척사업 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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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안희정 충남지사의 손에 들린 건 거름으로 키운 유기농 무다. 홍성군 관사 뒤 텃밭에서 다른 채소류와 함께 길렀다. 안 지사는 “60㎡ 남짓한 밭뙈기에서 잡초 뽑는 일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겉보기에 멀쩡한 방조제를 허물겠다니. 처음엔 조금 엉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희정(50) 충남지사의 발상이다. 바닷물을 막아 농토나 산업용지 등을 만드는 간척(干拓)사업이 아니라 “‘역(逆)간척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386세대 운동권 출신으로서 개발시대의 잔재를 없애겠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청계 고가도로를 허물고 청계천을 시민들에게 돌려준 일도 떠올랐다. 지난달 17일과 이달 4일 두 차례 안 지사를 만나 각종 사업과 정치 현안에 대한 그의 속내를 물었다.

 -왜 역간척 사업인가.

 “충남에만 하구언 둑(방조제) 279개가 있다. 둑이 물의 흐름을 막아 안쪽 민물 호수의 수질 오염이 심각하다. 수질 개선에 많은 예산을 쓰는데도 효과는 미미하다. 둑 일부를 개방해 바닷물이 드나들게 해 연안과 하구언의 생태를 복원하자는 게 목표다.”

 - 생태 복원은 좋지만 농지가 사라지는 등 손해가 크지 않나.

 “둑을 막아 농지를 만드는 건 식량이 부족할 때의 얘기다.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생태를 복원하고 둑 안쪽 지역에 해양 레포츠·관광을 즐길 수 있는 마리나를 만들면 부가가치가 더 높아진다. 해양 서비스산업을 키우는 거다. 둑 안쪽은 원래 지형이 육지 쪽으로 쑥 들어갔던 만(灣)이어서 태풍·파도 걱정도 별로 없다. 중국인 관광 수요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 역간척은 충남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부처가 나서야 하고 간척지 땅 주인과도 협의해야 할 텐데.

 “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가 10곳이 넘는다. 일단 의사를 타진했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올해 안에 구체적인 계획을 짜보려고 추가경정예산 5억원을 배정했다.”

 - 해양 서비스산업을 얘기하는데 지금 충남의 대표 산업은 아직 농업이다.

 “농업도 고칠 분야가 많다. 구조조정과 더불어 직불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농가소득에서 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정도 돼야 하지 않겠나. 유럽은 평균 비중이 35%인데 우리는 14%다. 정부에 건의하는데 반응이 별로 없다.”

 - 공업 비중을 늘려야 하지 않나.

 “방법을 바꾸련다. 공장을 유치해도 다른 도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있다. 충남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한 게 ‘충남형 산업단지’다. 산업단지를 만들 때 주거시설은 물론 어린이집을 비롯한 각종 복지시설을 함께 꾸미도록 조례를 바꿨다. 기존 산업단지 주변에도 이런 생활 관련 시설을 보강하고 있다.”

- 도지사임에도 정치 행사에 많이 참석하고 정치적 발언도 많다는 지적이 있다. 예컨대 지난달 4일 남북 정상회담 7주년 기념식에서 “분단 70년인데 남북 지도자들이 겨우 두 번 만났다는 역사가 부끄럽다”고 한 것 등이다.

 “참석은 가려고 가는 게 아니라 불러서 간다. 정치적 발언은 기자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답을 하는 정도다.”

 - 재선됐다. 2010년 처음 지사가 되고 난 뒤 이렇다 할 일을 한 게 없다는 소리가 있다.

 “취임하고 나서 재정상황을 보니 큰 사업을 벌일 여력이 없었다. 돈이 없어 사업보다 행정 혁신에 치중했다. 도청의 실·과별 모든 수입과 지출을 주민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내부적으로는 다른 부서에서 만든 공문서를 볼 수 있게끔 전산시스템을 바꿨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 왜 재정이 빠듯해졌다고 생각하나.

 “현재 세금 수입구조는 국세가 80%, 지방세가 20%다. 그런데 거둔 세금을 직접 쓰는 건 지방이 60%, 국가가 40%다. 세금은 8대 2로 거두면서 집행은 4대 6으로 하는 구조가 잘못됐다. 그러다 보니 지방이 하는 60%에 국가가 간여한다. 지방에 60%를 온전히 맡기고 국가는 40%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한다. 지금은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아니다.”

 - 국가 개입이 지나치다는 건가.

 “중앙과 지방 정부의 영역을 분명히 나눠야 한다. 지금은 국가가 많은 일을 하다 보니 ‘꽃밭 만들어 달라’ ‘하수구 청소해 달라’는 것까지 주민들이 나라에 요구한다. 이런 건 지방의 자율적 재정 지원 아래 주민들이 할 일이다. ”

 - 올해 지방선거 전에 첫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돌릴 수 있는 접시에 한계가 있더라. 혁신 같은 것도 여러 과제를 추진하기 힘들었다. 급한 현안 발생하면 한두 달 금방 지나가면서 지체되고 드라이브를 계속 걸다 보면 지쳐서 또 느슨해지고…. 대통령도 5년 갖고는 어렵다.”

 - 그렇잖아도 대통령 임기와 관련해 개헌 논의가 오가고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처럼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원포인트 개헌은 적절치 않다. 새로운 앱 하나 나왔다고 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제 (OS)를 바꾸는 격이다. 이렇게 하면 OS가 망가진다. 헌법은 민주주의 공화국의 OS를 만드는 거다. 앞으로 사용자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를 고려해 OS를 개선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당파를 떠난 위원회를 만들고 미래 국민의 기본권, 통일, 지방자치 등을 고려해 헌법을 어떻게 만들지 장기 토론했으면 좋겠다. 1950년대 후반 개헌 작업을 시작한 프랑스는 50년이 걸려 2008년에 개헌했다. 우리는 너무 급하다. 또 나까지 포함해 현재의 정치인들은 개헌 수혜에서 제외돼야 한다. 충분히 토론해 현 정치인들이 무덤에 들어간 뒤에 작동하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 수혜’란 말을 꺼냈다. 2017년 대권에 도전할 생각인가.

 “충남도를 대한민국의 모범으로 만들기 위해 도정에 전념할 뿐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친노 해체를 공개 선언하겠다고 했다(본지 11월 7일자 8면).

 “노 코멘트다.”

 안 지사는 개헌론에 이어 ‘연기(이어서 두는) 바둑론’을 꺼냈다. 국정이란 연기 바둑과 같아서 지도자는 앞의 사람이 이룬 것을 잘 이어나가야 한다는 게 요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둑판을 새로 받는 게 아니다. 바둑 전체 300수를 둔다고 치면 5수 정도 놓고 떠난다. 처음부터 다시 두는 것처럼 계획하거나 접근하는 것은 무리다.”

안희정의 텃밭

관사 뒤 60여㎡ 2년 경작 초보 농부 … “농민 마음 느끼려 시작”

안희정 지사는 하루를 텃밭 가꾸기로 시작한다. 충남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관사 뒤편에 직접 만든 60여㎡ 텃밭에서다. 2012년 12월 충남도청이 대전에서 홍성으로 옮긴 뒤 텃밭을 일궜다. 안 지사는 “농업을 체험하고 농민의 마음을 느끼고 싶어 농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 6시쯤 텃밭에 나와 잡초를 뽑고 물을 준다. 거름도 스스로 사다가 뿌린다. 그렇게 상추·깻잎·고추·치커리·옥수수·감자·수박·오이 등을 키웠다. 요즘은 김장용 배추와 무가 자라고 있다.

  재배법은 인터넷을 뒤지고 때론 충남도 농업기술센터에 물어 익혔다. 어린 시절 철물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소규모로 일구던 밭에서 담뱃잎을 따거나 땅콩을 캔 적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농사짓는 법은 잘 모른다고 했다.

  텃밭은 안 지사가 농민의 마음을 느끼는 매체이자, 반찬거리를 제공하는 장소다. 부인 민주원(50) 여사는 현재 고3인 둘째 아들과 함께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다. 그래서 안 지사는 텃밭에서 거둔 호박 등으로 직접 된장찌개를 끓여 아침상에 올린다. 오이 버무리 등도 직접 만들어 먹었다. 그러고도 남아 직원들에게 수시로 나눠준다.

  그는 “곧 텃밭에서 거둔 채소로 김장에 도전해볼 생각”이라며 “조그만 텃밭에서도 많은 작물이 나오는데 큰 규모로 농사 짓는 농민들은 그걸 어디에 내다팔까 걱정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부친이 박정희 이름 앞뒤로 바꿔 ‘희정’으로 작명

지난해 5월 24일 오후 안희정 지사가 충남 보령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뒤 도청으로 돌아갈 때였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운전기사가 코피를 흘렸다. 안 지사의 행사 일정 때문에 매일 장거리를 뛰다 보니 피로가 쌓였던 것이었다. 차를 세우라고 한 안 지사가 말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안 지사)

 “예?”(운전기사)

 “뒤에서 좀 쉬세요.”

 어쩔 줄 몰라 하는 운전기사를 뒷자리에 태우고 안 지사가 운전을 해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충남 홍성에 도착했다. 안 지사는 “늘 애써주시는 분이라서…”라고 했다.

 안 지사는 이렇게 격의 없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외부 약속이 없어 도청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때는 꼭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가끔은 퇴근 뒤 직원들과 도청 체육관에서 탁구나 배드민턴을 함께 친다.

 지사 초기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직원들이 피했다. 그러면 안 지사는 쫓아가 말을 걸었다. “왜 피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했다. 직원들이 “어려워서”라면 “엘리베이터 안 같은 공간에선 그저 친구 아니면 선후배이니 편하게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안 지사에 대해 “이미지 만들기에만 신경 쓴다”는 견해도 있다. 태안반도 북쪽 가로림만에 조력발전소를 설치할 것인가, 말 것인가처럼 주민들 간에도 의견이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해서다. 안 지사 측은 “충남이 아니라 국가 사업이라서 지사가 거론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고향은 충남 논산이다. 철물점을 운영하던 부친이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 앞뒤를 바꿔 ‘희정’이라고 지었다. 남대전고 1학년 때 『러시아 혁명사』를 읽고 혁명을 꿈꾸며 중퇴한 뒤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1989년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비서실장이던 김덕룡 의원과 일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10년 처음 지사에 당선된 뒤 보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게 됐을 때 몹시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만남을 거듭하면서 그분들이 나를 조금씩 이해해주신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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