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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방북 협의 시작 … 김정은 만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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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11년 김정일 조문 모습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인 2011년 12월 26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가 김정은 당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현 국방위 제1위원장)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이 여사 뒤로 아들인 김홍업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보인다. [중앙포토]

이희호 여사의 북한 방문이 남북 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 여사의 평양 방문이 성사되면 남북 대치 국면에 모종의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과 면담까지 이뤄질 경우 남북 간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6일 “김대중평화센터 측이 어제(5일) 이 여사의 방북과 관련해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했고, 정부가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 여사 쪽에서 방북을 추진하기 위해 북측과 접촉하는 걸 승인했다는 얘기다. 접촉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방북 신청을 해 오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김대중평화센터는 국제전화 팩스를 이용해 북한 아태평화위(위원장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와 방북 경로, 일정, 방문단 규모 등을 다루는 협의를 시작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승인하는 데 별문제는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 여사는 “북한을 한 번 갔다 왔으면 좋겠는데 대통령께서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그 말을 들은 박 대통령은 “언제 한 번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보겠다”고 대답했다. 박 대통령은 이 여사를 만났을 때 이 여사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방한용 모자와 목도리를 짜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뒤 대북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시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때 조화를 전달한 북측 김양건 부장이 ‘이 여사에 대한 방북 초청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여사가 실제 방북한다면 상징적 의미가 만만찮다. 5·24 대북조치가 여전하고, 대북전단 문제로 남북한 관계가 험악해진 상황에서 정부 승인을 받아 평양에 간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이 여사는 남북 화해·협력의 물꼬를 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를 상징한다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만나게 될지도 관심이다. 이 여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2011년 12월 조문차 방북했었다. 대선 국면에서 적지 않은 비판여론을 무릅쓰고 강행한 문상이었다. 그때 상주(喪主)이자 권력 후계자인 김정은을 직접 만나 위로한 일도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이 여사를 직접 면담하고 융숭히 대접할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재회가 성사되면 당시 조문에 사의를 표하고,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받들어 나가자는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중론도 있다. 북한이 이 여사의 방북을 흔쾌히 받아들이기에는 안팎의 사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일행의 10월 초 인천 방문을 계기로 유화공세를 펼쳤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회담판을 깨고 대결모드로 돌아섰다. 이런 형국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 여사를 만나는 건 부담이 그만큼 클 수 있다. 김정은의 건강상태도 변수다.

 일각에선 2006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무산된 사례를 들기도 한다. 당시 북한은 방북을 초청하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8년 전 대북 협상을 이끈 정세현(전 통일부 장관) 원광대 총장은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이 희망했던 철도 방문은 물론이고 차량을 이용한 방북까지 북한은 거부했다”며 “결국 항공편을 이용해 오라는 바람에 결렬됐다”고 말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 측과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 등 정세 불안 때문에 방북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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