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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승부는 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포클랜드 주변을 맴돌던 영국군이 포클랜드에 전격 상륙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워싱턴의 움직임도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영국군의 포클랜드 상륙은 지금까지의 군사적 행동 중 가장 노골적인 정공법이긴 하나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포클랜드 사태가 며칠 안으로 단번에 승부가 나버릴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영국이나 아르헨티나나 모두가 동원할 병력과 군사장비 면에서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는데다 전투장인 포클랜드의 지형과 괴퍅한 날씨 때문에 이 전투는 상호간에 상당한 댓가를 치르면서 장기전 양상으로 돌입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지금까지 미국은 포클랜드 사태와 관련된 각종 군사정보를 영국군에 제공하는데 그쳐 왔으나 일단 전면전의 양상을 띤 이상 미국의 군수물자공급도 본격화 될 것 같다.
「레이건」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21일 유사시 미국이 영국군에 제공할 군사장비의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미국관리들의 이 장비소개는 지대공 미사일, 지상 레이다 기지, 포터블 탱크, 엔지니어링장비, 히터, 제너레이터, 탄약 등이 포함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 상황에 따라선 KC-135기도 동원, 영국 전투기의 공중 급유를 돕는 것도 미국이 마련한 대 영 긴급지원방안의 골격속에 포함돼 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영-아르헨티나 양군의 주력부대가 본격적으로 정면충돌할 경우 최소한 쌍방병력의 20%정도는 희생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양군이 이같이 막대한 희생과 출혈을 각오하면서까지 장기전을 벌이게 될 경우 미국정부의 입장이 점점 더 곤경에 빠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영국 지지를 선언한 「레이건」 행정부의 방침이 당장은 미국 국내여론의 지지를 받기는 했으나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미국이 과연 영국군을 한정 없이 지원해야만 할 것인지, 또는 미국내 여론이 계속 이를 용납할 것인지도 미지수이고,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에 동정적인 라틴 아메리카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 미국정부엔 가장 큰 부담으로 남게된다.
만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영국군이 다시 포클랜드를 완전 점령하고 그 섬에 영국의 「유니언·잭」이 휘날릴 경우 미국과 영국을 미워하는 라틴아메리카인 들의 감정이 증오의 감정으로 폭발할지도 모를 일이며 이러한 반미 감정의 물결을 교묘히 이용해서 소련세력이 미국세의 공백을 메우려 남미지역에 파고 들어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40여년이나 계속돼온 정치적·경제적 혼란이 이번 전쟁을 통해 더욱 가중되고 있으며 『아메리카 대륙은 서로 힘을 합친다』는 전통이 미국의 배반으로 끝장이 났다고 믿고 있는 아르헨티나 국민감정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인 들의 반미감정이 고조되어 이것이 자칫 친소경향으로 연결된다거나 소련세력이 어부지리로 이 지역에 침투한다면 미국의 대외정책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할 심각한 새로운 사태가 야기되고 만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때문에 미국은 어떻게 해서라도 포클랜드 분쟁을 협상테이블로 끌고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영국편을 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중재에 기대할 명분은 이미 사라졌다.
따라서 마지막 남은 협상노력은 유엔을 통해서 다시 한번 시도될 것 같다.
영국이 포클랜드에 대한 병력상륙 사실을 협상테이블에서 유리한 카드로 사용하려 하겠지만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치열한 전투를 하는 도중에도 유엔의 중재노력은 계속될 수가 있다.
미국은 중재자의 자격은 상실했지만 군사적으로는 영국을 지원하면서 협상노력을 외면할수는 없는 어정쩡한 입장이 돼 버렸다. 【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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