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48. 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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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서영춘(左)씨와 함께 출연했던 코미디 영화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한 장면.

1970년대 초반 이름을 날리던 코미디언들의 연예계 출발은 거의 비슷했다. 대부분 유랑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한 희극배우들이었다. 예외없이 연구생 시절을 거쳤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돈을 몰랐다. 오랜 세월동안 돈을 번 경험도, 돈을 만져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돈이 생기면 쓰기 바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사는 게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돈을 모르고 살다가 몸값이 치솟자 뭉칫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쇄도하는 출연 요청과 함께 밀려오는 돈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할 지경이었다. TV가 없었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돈보따리를 들고 와서 계약서를 내밀면 별 생각 없이 도장을 꽝꽝 찍어줬다. '무대에 나가서 관객을 웃겨주면 되지.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빨리 돈을 모아 내 명의로 된 집 한 채를 마련하고 싶은 간절함도 한 몫을 했다.

73년 초가을이었다. 어느 맥주집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월 40만원을 드리겠소. 넉 달간 출연해 주시오." 넉 달치면 무려 160만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나는 '이게 웬 떡이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출연계약서에 '쿵' 소리가 나도록 도장을 찍었다. 계약서 아래에 깨알같이 적힌 내용은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의례적인 문구려니 생각했다.

며칠 후 돈을 받기로 한 날. 맥주집 주인은 160만 원짜리 어음을 내놓았다. 넉 달 뒤에나 현금을 찾을 수 있는 어음이었다. "아니, 이게 뭡니까. 현금을 주셔야죠." 하지만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뒤였다. "우리 집에선 모든 연예인들에게 출연료를 어음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배 선생님에게만 이러는 게 아닙니다." 굳이 필요하다면 어음을 현금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했다. 대신 5푼 이자를 떼겠다고 했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자를 떼고 나니 120여만원이 수중에 들어왔다. 큰 돈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 업소에 고정 출연하게 됐다. 한 달쯤 지나서 심한 몸살이 찾아왔다. 밤낮으로 방송국과 밤무대 업소를 쫓아다녔으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맥주집 공연을 사흘이나 펑크를 냈다. 그런데 무단 펑크가 문제였다. 미끼에 걸려든 것이었다.

자리를 털고 업소에 나가니 주인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사흘간 펑크를 낸 것은 계약 위반입니다. 계약서에 적힌 대로 한 달간 무료 공연을 해주셔야겠습니다." 너무 황당했다. "아니 무슨 경우가 이렇습니까. 사흘을 빠졌으면 사흘간 더 출연해드리면 되잖아요." 주인은 계약서를 들이밀며 법적 책임을 거론했다. 나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이런 식으로 당하는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법정에서 나는 지고 말았다. 매니저도 연예기획사도 없던 시절, 어찌 보면 한 번쯤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배우들은 무대밖에 몰랐다. 출연계약서 작성 등 법적인 문제에는 너무 무지했다. 그 때 연예계는 그랬었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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