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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시장의 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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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의령사건의 여진이 아직 생생한 터에 이번에는 사회지도층 인사에 의한 외화도피사건이 일어나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검찰은 7일 전직고관으로 10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화산업사장 이 모씨와 그의 부인 장모여인을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현재 이들의 혐의는 외화 40만 달러를 환치기로 해외에 도피시키고 40만 달러를 암시장에서 바꿔 감춰 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채시장과 증권가의 이른바 「큰손」으로 거래질서를 교란시킨 것이 더욱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부정사건이나 범법행위란 어느 사회 어느 시대 건 있게 마련이지만, 제5공화국 출범 후 깨끗한 정부를 표방하고, 특히 의식개혁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마당에 저명한 「공인해 의해 일반 서민들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부조리가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던진 충격은 심각하다.
국회의원과 정부기관의 제2인자를 역임한 명사가 이런 부조리의 장본인이었다는 점은 법적인 차원보다 우선 도의적인 면에서 용납될 수 없는 파렴치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당국이 이들의 외환관리법위반 사실을 먼저 문제삼은 총점은 이해할 수 있으나 사채시장에서 저지른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는 철저히 가려내야 할 줄 믿는다. 지금 국민들은 권력형 부정·부패란 새 정부의 강력한 응징으로 과거의 유물이 된 줄 믿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그 망령이 아직껏 이 사회의 치부로 납아 사회에 해독을 끼치고 있다는 데 개탄을 금하기 어렵다.
당국은 이 기회에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가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며, 법 앞에 예외가 없다는 실증을 보여야 할 것이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모든 기업은 오랜 불황으로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 그럴수록 사채업자들이 위세를 부리고 횡포가 심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씨 부부가 1백억 원을 빌려주면서 2백억 내지 3백억 원 짜리 어음을 담보로 요구했다는 것은 그런 횡포의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사채시장이 화가 많고 때로 물의를 빚었음에도 불구하고「필요악」으로서 경제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사채시장은 거의가 지하경제의 일환이기 때문에 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법 이외의 지대라고 해서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고 횡포를 부려도 되는 것은 아니다.
법의 손길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사채시장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어야 한다. 어느 사회 건 질서란 공정·신용·도의·의리가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이씨 부부의 사채시장 교란은 이 같은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이기에 더욱 사회적 지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 있다는 이씨 집 담 장은 무슨 군사요새나 철옹성처럼 여러 가지 시설을 해 놓고 있다. 서치라이트, 경고용 스피커와 인계철선에 이르기까지 경보장치로서는 없는 것이 없다.
그것을 보는 일반국민들의 위화감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외환관리법 말고 이들이 어떤 범법을 했는지 우리로서 말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이들의 행위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사회윤리나 룰에 비추어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지적하고 싶다.
깨끗한 정부, 깨끗한 공직풍토는 바로 최대 국정목표며, 새 정부의 미 표라고 할 수 있다. 일어탁수 격으로 몇몇 지도층 인사들이 이 같은 국정목표에 금이 가도록 하는 일이 없어야 국민화합에도 기여를 하는 것이다.
사직당국의 사건처리를 주시하면서 이 기회에 사채시장의 양성화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가해지기를 촉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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