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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인권센터, "오 대위 자살원인은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장애"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군 장교 오모(28) 대위의 자살원인이 직속상관인 노모(37) 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장애라는 심리부검 결과가 나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 오 대위의 유가족 등은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 대위의 죽음은 직속상관 노 소령의 가혹행위와 성추행이 자살의 원인”이라며 “노 소령에 대한 공소사실에 강제추행 치상 혐의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오 대위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을 맡은 2군단 보통군사법원 재판부가 노 소령의 가혹행위를 인정하고도 오 대위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배제해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면서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심리부검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 소령에 의한 모욕과 성추행, 성적 모욕은 오 대위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부심과 성실함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노 소령은 군형법에 따라 강제추행 치상죄에 해당하며 강제추행, 가혹행위, 모욕 등 범행으로 인한 상해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가족ㆍ친척ㆍ친구 등 지인들의 면접조사와 자살자의 의료기록 및 정신과 치료기록 분석 등을 통해 정확한 자살의 원인을 밝혀내는 방법이다. 자살사건이 외압에 의한 타살인지, 사고사인지 등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 대위의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자살 가능성이 없었던 오 대위는 15사단 전입 초기 우울 기분이 있는 적응장애를 겪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장애가 주요우울장애로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 대위의 심리부검을 진행한 전준희 화성시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오 대위가 전입 후 가벼운 우울 증상을 겪다 심각한 우울장애를 겪었고, 복통과 구토 등 신체적 고통을 겪기에 이르렀다”면서 “지속적이고 더욱 심해지는 노 소령의 가해행위는 오 대위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 대위의 아버지는 “명예로운 대한민국 여군이었던 딸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산 사람들이 말을 해서 억울하게 죽은 딸의 명예를 지켜 달라”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는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이날 오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열리는 두 번째 항소심 공판기일에 공소장에 기재된 가해자 노 소령의 혐의를 강화하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오 대위는 지난해 10월16일 자신이 근무하는 부대 인근에 주차된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오 대위는 직속상관의 폭언과 성추행, 성관계 요구 내용 등이 적힌 유서 형식의 메모를 남겼다.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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