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 동심…상처 남길 일 너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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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어린이헌장을 보면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를 이어나갈 새 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한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기성세대, 나아가 사회로부터 어린이는 보호돼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어린이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른바 사각지대라는 곳이 의외로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서=보호라는 개념은 크게 물질적 차원에서의 보호와 정신적 차원에서의 보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물질적인 면에서 보호의 사각지대를 얘기하는게 쉬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주위에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아이들이 무척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자전거를 탈만한 장소가 따로 없는 겁니다.

<건널목엔 신호등을>
자동차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아요. 저녁때 무사히 집에 돌아온 아이를 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중얼거리게되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닐겁니다.
이=자전거도로도 문제지만 건널목의 신호등은 더욱 절실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을 보면 신호등이 설치 안돼 있는 건널목이 많아요. 교통사고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런 예방시설을 보다 충실히 갖춰야할 것 같습니다.
학교주변을 보면 불량놀이기구를 파는 곳이 의외로 많아요. 최근 신문에 보도됐던 불량주사기로 인한 실명사건은 불량놀이기구로부터 어린이가 보호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지요.
사온지 하루가 못돼 망가지는 장난감, 엉터리 과학기재 등은 신체적 위해를 끼치는 것뿐 아니라 「불신」이라는 상처를 동심에 남기게 된다는 점에서 조속히 근절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자꾸 아파트 얘기만 하게 되는데요(웃음), 아직도 대부분의 고층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에 어린이용 받침대를 설치하지 않아 불편이 많아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방문마다 문고리를 두개씩 달아 어린이가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것을 봤어요. 이처럼 어린이를 배려하는 사회·가정이 돼야할 것 같아요.
김=불량음식물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젭니다. 위생처리가 제대로 안된 노점상에서 음식물을 사먹고 복통을 일으킨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아직까지 뿌리뽑히지 않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보호의 사각지대로 군림해온 분야가 바로 불량음식물지역인 것 같습니다.
서=흔히 안전하다고 방심하는데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 같은 곳은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보호의 사각지대가 됩니다.

<놀이터주변도 위험>
한 예로 보호자가 없이 혼자서 놀이터에 간 꼬마는 그네 주위를 지나다가 그네에 부딪쳐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네가 움직이는 반경을 짐작치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지요.
언제 어디서든 내 아기이고 아니고에 상관없이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려는 의식을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어야겠어요.
김=이제 정신적 차원에서의 사각지대를 얘기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물질적인 보호의 사각지대보다는 정신적인 보호의 사각지대가 훨씬 더 심각하다고 여겨집니다.
이=정신적인 보호의 사각지대를 놓고 볼때 제 생각으로는 보호돼야할 것이 보호되지 않는 것과 과보호되는 것을 들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국교생 1백20명을 대상으로 인성검사를 한 결과 충동성이 99·8%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흔히 『요즘 아이들은 참을 줄을 모른다』고 하는데 그것이 증명된 셈이죠.

<정신적 측면도 중요>
이것은 과보호로 인한 결과라고 일단 보아집니다.
서=우리집 경우만 해도 TV프로가 바뀔 때마다 주인공을 묘사한 새로운 장난감을 사들여야합니다. 장난감 수가 많지만 아이들 성화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욕망을 제지당하는 것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최근 강조되고 있는 「창조」도 문제가 있습니다. 창조란 남과 다르고 남보다 앞섰을 때 인정을 해주는 것이죠. 그 아이의 지식·경험·적응력이 모두 다 따라갈 경우 문제가 없는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디어만을 사주기 때문에 나중에 자폭하는 결과를 빚게됩니다.
서=바로 능력을 갖춘 완성된 인간이 아니라 배경 속의 한 부속품화하기 때문에 문젭니다.
이=어린이의 정신적 성장과정에서 동일시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붕괴가정 또는 결손가정이 상당히 늘고 있어요.
이런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누구를 동일시대상으로 할 것이냐는 것도 심각합니다.
김=어린이들이 느끼는 갈등을 넓게는 사회 내지 문화환경, 좁게는 가정환경이 이를 승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개인, 즉 어린이 자체가 되겠지요. 개인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부모가 일깨워주되 궁극적으로 스스로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학』에서는 입신하고 입지하여 정진하라고 했습니다. 책읽기를 통해 앞 뒤 좌우를 분석·판단하여 자신에게 맞는 해결방안을 강구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
서=요즘 아이들은 책 읽는데 보다는 TV보는데 시간을 더 빼앗기고 있는 것 갈아요. 즉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TV로 인해 생각하는 기능이 마비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프로그램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제작에 참여하는 분들이 더 많이 생각하고 계실 테니까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업성적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대단한 반면 정신 문화적 측면에는 너무 무신경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서=어머니의 역할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이=얘기가 약간 빗나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머니들의 교육지도방법에 문제가 많습니다.
최근 교육과정에서는 주입식을 지양하고 사고를 유발하여 스스로 비판할 수 있게끔 이끌어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의 어머니교육은 주입식으로 획일화시키고 있어요.
바로 그러한 교육방법이 학교교육을 따분한 것으로 느끼게 하고 충동성을 자극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한마디로 「어머니는 천국이자지옥」이지요(웃음).

<인본주의 교육필요>
김=미국의 경우 50년대 생활중심교육에서 인지교육(60년대)으로 바뀌었다가 최근 들어 다시 인본주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맹자』에 보면 자신의 벼를 더 빨리 자라게 할 셈으로 살짝 뽑아 놓았다가 결국 뿌리가 말라죽었다는 고사가 나오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본연의 자세입니다.
이=연전에 디즈닐랜드에 들렀다가 링컨홀·위대한 아메리카 등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링컨홀에서는 「링컨」대통령의 육성이 그대로 울려 나오기까지 하더군요.
거기에 비해 우리 어린이대공원을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잔디밭 구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어린이 대공원뿐만 아니라 일반 놀이터나 유적지를 가봐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사회교육은 죽어있는 거나 같아요.
김=한마디로 문화의 사각지대라고 할수 있지요. 우리 조상의 문화유산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이=어린이가 가장 많이 읽고 있는 것이 바로 만화입니다. 건전한 독서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 공공도서관의 규모나 시설이 보충돼야 할 것 같습니다.
김=앞으로의 세대는 정보화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빨리 얻어진 것을 개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이끌어 갈수 있느냐가 성패의 열쇠가 되지요. 동기유발을 일으키게 하고, 창조를 키워나가는데는 도서관 이용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81년 현재 전국1백18개의 도서관가운데 75개소가 어린이 열람실을 갖추고 있으나 겨우 64%만, 그것도 열람봉사에 국한, 활동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 보다 활성화된 어린이도서관을 통해 정신적인 보호의 사각지대가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정리=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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