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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순경과 총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말 같다. 술에 만취한 경찰관이 지서에 보관중인 수류탄과 카빈총으로 주민들을 무차별 난사해서 자그마치 60여명을 숨지게 하고 4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는,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너무 엄청난 보도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황으로 보아 이번 사건은 「동기 없는 살인」의 전형적인 일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연의 처와의 사이에 불화가 계속되고 생활에 대한 불만이 쌓여왔다곤 하지만 범행자체는 우발적이고 광폭하여 도저히 동기와 이유를 붙일 수가 없다.
자신의 불만을 까닭없이 자기와 직접 관계없는 다른 사람에게 풀려고한 점에서 정향없는 증오심의 광태로 밖에 볼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동기없는 살인」이 사실은 동기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통제기능의 저하, 개인의 자율정신의 결여,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의 증대를 반영하는 현대적 범죄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물질적 풍족과 번영을 최고의 가치로하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낙오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갖게되는 자포자기적인 탈선행위다.
무엇보다 엄중히 지적할 일은 허술한 무기고관리문제다. 예비군 무기고가 털리는 사고로 전국에 비상경계망이 쳐지고 그로 인한 검문검색의 강화로 시민들의 통행에 지장을 주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접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범인이 바로 경찰관이었기 때문에 수류탄 7개, 카빈총 2정, 실탄 1백80발을 한꺼번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무기고관리의 새로운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즉 경찰관이라 해도 독단으로 무기고에 출입할 수 없도록 관리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의 무기고관리는 외부의 불순분자들의 손이 미치지 않도록 하는데 역점이 두어졌지만, 지금부터는 어떤 직책의 사람이건 무기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중 삼중의 체크를 받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관계자들의 인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일로해서 경찰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누구도 바라는 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회의 안녕질서가 중요하면 할수록 이를 말은 경찰관의 자질도 우수해야 한다. 그러러면 우수한 사람이 경찰의 문을 두드리도록 여건부터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좌절하지 않고 이를 계기로 모든 경찰관들이 더욱 분발해서 치안확보에 노력해주기 바란다.
비명에 간 사망자의 명복을 삼가 빌면서 유족들 및 부상자들의 위로와 치료에 만전을 기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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