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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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프로야구의 페넌트 레이스는 차차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어제 서울의 청룡은 부산의 롯데를 간신히 누르면서 5연패의 수렁에서 기어나왔다. OB는 38개의 안타를 주고받은 끝에 삼미를 물리쳤다. 삼성도 해태를 누르고 10승 5패로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휴일의 TV중계를 보면서 프로야구의 스타들은 고교야구의 스타들임을 다시 확인한다.
고교야구에서 이름을 드날리던 그때의 선수들이 지금 프로야구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프로타수 10무중에도, 방어율경쟁의 선두다툼을 하고 있는 투수들중에도 고교야구시대의 강타자철완들이 즐비하다.
프로야구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고 있지만 거기서 뛰는 선수들은 벌써 세상 모르는 동네 야구선수는 아니다. 폐기넘치던 마음가짐도 이젠 벗어버리고 어딘가 신중하고 묵직하다. 공 하나 하나에 온 신경이 쏠리고 움직임에도 정성과 명예가 온통 담겨있는 것 같다.
프로는 전문가들인 만큼 조그만 실수도 용서되지 않는다. 그만큼 긴장도도 높다. 플레이엔 성숙된 맛과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 프로들도 고교야구시절을 거쳐서 비로소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지금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삼성라이온즈팀의 한 투수는 고교야구에서 치욕의 기록을 남긴 때도있다. 결승에서 그는 상대팀의 4번 타자와 오기만으로 대결하다가 1게임 3개의 연속홈런을 얻어맞기도 했다.
노련해지고 겸손도 배운 요즘이라면 그는 그런 무리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고교야구는 또 역전의 드라머가 자주 연출돼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3점을 뒤진 팀이 심약한 투수의 난조를 틈타 9회 말에 일거에 4점을 뽑고 역전승을 거둔 일도 있다.
간단히 받아 올릴 평범한 플라이볼을 덤벙대다 놓쳐 대세를 그르치는 수도 있다.
고교야구는 그런 실수와 의외성으로 인기를 모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괴력이 있다. 모교애와 애향심이다.
벌써 초로의 신사가 된 이들도 고교야구에 맛이 들고나면 한낮에 몰래 직장을 비우고 운동장에 나와 앉기도 한다. 손자뻘이나 되는 모교의 후배들과 어울려 교가를 불러대는 이도 있다.
경비원이 애써 단속해도 용케 숨겨들여온 소주로 기분을 내는 이도 있다.
운동장의 열기가 고조되면 관중은 박수와 고함의 대합창속에서 망아의 도취감을 만끽한다. 팬은 거기서 누적된 세파의 기강과 불만을 한꺼번에 폭발시키고 울적한 기분을 씻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고교야구는 우리사회에서 이제 없어선 안될 행사가 됐다. 단순한 스포츠행사가 아니다.
사회재생의 축제다.
중앙일보사가 주최하는 대통령배 쟁탈 전국고교야구가 26일 막을 열었다. 1967년에 시작했으니까 벌써 16회를 맞았다. 사회재생의 축제가 이봄을 더욱 의미롭게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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