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부도 처리로 피해 눈덩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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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금융결제원이 보낸 ’부도 처리 정정문’을 내보이는 이태희 사장.

"이런 청천벽력이 있습니까. 멀쩡한 회사를 부도처리하다뇨."

6일 오전 10시20분 충남 천안 봉명동의 천일건설 이태희(50)사장에게 다급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성환 D중학교 신축 현장에서 벽돌공 10명이 "지급 보증을 해주지 않으면 일을 더이상 못하겠다"며 작업을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 24일 자신의 회사가 금융결제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부도 처리 발표된 이후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사장은 "당시 3700여만원짜리 어음을 농협에 입금했으나 금융결제원이 입금이 안된 것으로 전산처리하는 바람에 전국 금융기관에 당좌거래 정지자로 통보됐다"고 말했다. 이어 천일건설은 주요 신문에 거래정지자로 공고됐다.

그는 이런 사실을 절친한 거래처로부터 뒤늦게 전해 들은 뒤 금융결제원에 "신문 등에 정정 공고를 내달라"며 시정과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금융결제원 측은 공기관의 대외적 신인도가 추락한다며 거부했다.

곧이어 회사로 '이상한 팩스'가 줄을 이었다. 신문에서 부도사실을 알았다면서 모든 재산이 압류되기 전 건설 면허를 자신에게 팔면 '좋은 가격'으로 사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는 악화돼 갔다. 아무리 잘못된 부도 처리라고 설명을 해도 원청 건설업체에서 하도급을 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자재 공급업체에서 현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물건을 줄 수 없다고 해 하청받은 공사까지 중단할 지경에 처했다. 게다가 기존 자재 대금까지 미리 갚아 달라고 성화다. 사채도 빌리기 힘들게 됐다.

"나는 주위에선 (부도 발표된 일)모르고 있는 줄 알았어요. 모두들 내가 낙담할까봐 모르는 척 했다는 거예요. 정말 속이 터질 일이죠."

이 사장은 6일 자신이 다시 하도급을 준 골조 업체가 공사 발주처인 D중학교에서 직접 공사대금을 받도록 조치했다. 부도 발표된 업체를 어찌 믿고서 공사를 계속하겠느냐는 반응에 어쩔수 없었다. 학교도 이 사장이 공사대금을 지불못해 학교가 곤란해 지길 원치 않았다.

이사장은 "철근콘크리트.토목.상하수도.도로포장.석재 고사 등 5개 전문건설업 면허로 20년 동안 공들여 세운 회사가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13명의 직원들도 하루하루 불안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결제원 천안지부 관계자는 "10년에 한번이나 있을까 말까한 실수가 벌어졌다"면서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천일건설의 신용 회복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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