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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해치는 한·일 불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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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이 건재함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두 정상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서는 양국의 의견 차이가 드러났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가장 두텁고 지속적인 지지자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올랐다. 일본은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적극 지원했고, 이라크에도 자위대를 파견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시 행정부로서는 한국이 일본을 비판하는 것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일본을 국제 안보의 중요한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을 우경화와 재무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독도 문제에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논쟁으로 한국.중국은 일본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이전에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은 서울과 베이징(北京)을 자극해왔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과 '떠오르는 중국 견제'에 집중해온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문제를 긴박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 발언을 하자 비로소 미국은 한국이 강력한 미.일동맹을 비판하고 나선 데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긴장관계를 완화하는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데 대해 미국이 반대한 것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 둘 다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데도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립적이면서 등거리 관계를 지향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낸 데 대한 거부감이다.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차관이 "미국은 일본과는 민감한 정보를 나누지만 한국과는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한국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워싱턴의 정책 분석가들은 한국이 일본을 비판하고 나선 데 대한 감정적인 대응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 특히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의견 차이가 해소되기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긴밀한 관계가 중요하다. 북한 문제에 대해 미국.일본.한국의 정책 공조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에서 드러난 미국의 국방정책 변화는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GPR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긴급상황에 미군이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병력을 유연성 있게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한국과 일본이 별개의 고립된 상황에서 미군이 고정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최우선 동맹 파트너인 한국과 일본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워싱턴 정책 당국자들은 한국이 일본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안보 불안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이 지역의 평화를 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같은 민주국가로서, 또 미국의 동맹으로서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논쟁에 끼어들고 싶어하지 않지만 일본이 역사 문제에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막후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한층 지역화되고 동맹에 기초하는 미군 주둔 전략의 기초를 다지는 데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실질적인 안정을 위한 전제조건인 경제 번영과 투명성, 민주적 가치를 공고히 하는 데도 필요하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및 태평양 포럼 CSIS 선임회원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