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끌려가는 출판사|판매마진 높여 매절 강요 일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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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근 일부 대형서점에서 출판사들에 매절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책을 현금으로 사갈테니까 판매수수료를 높여달라는 서점의 이러한 요구에 출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응하는 경우가 많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책이 서점에서 푸대접받는다』고 출판사들은 말하고 있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독자들의 눈에 띄는 곳에 진열하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지는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진열해 놓는다면 큰 타격이 된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만들어진 책은 보통 정가의 75%정도로 서점에 넘겨져 위탁 판매된다. 25%가 서점의 판매수수료가 되는 셈이다.
매절을 할 경우 서점은 출판사에 평균 35%의 판매수수료를 요구한다. 또 그 이상일 수도 있다. 판매수수료를 10% 더 요구하는 것은 관례상 서점이 책을 받아오면 4개월 어음을 떼어 대금을 결제하는데 비해 현금으로 지불하면 이자이익이 없어진다는 것이다(그러나 실제로는 현금을 주지 않고 1∼2개월 어음으로 처리하기도 한다고 출판사들은 말한다).
또 일단 사온 책은 팔리지 않아도 반품할 수 없어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것.
그러나 서점들이 매절하고자 하는 책은 모두 잘 팔리는 책들이다. 또 모두 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서점들은 매절하고자 한다.
매절한 책을 잘 팔리게 하기 위해 서점이 쓰는 방법은 그 책을 독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내놓고 또 여러 군데 진열하는 것이다. 대형서점의 경우 한 가지 책이 6∼7군데에 진열되는 수도 있다.
서점측은『잘 팔리는 책을 더 팔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런 책중에 매절한 책이 많다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점원들의 적극권장도 한 방법. 서점에 온 독자 중 10%정도가『어떤 책이 좋은가』를 물어서 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때 매절한 책을 소개하는 것이 서점 측에 이익이 된다.
서점들의 매절과 적극판매는 일부 출판사의 태도 때문에 더 빈번해진다. 즉 일부출판사들은 서점이 매절을 함으로써 자기들이 낸 책이 많이 진열되어 붐을 이루기를 기대하고 대형서점에 매절을 부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서점은 매장이 좁다. 많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골고루 독자 앞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서적들이 매장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면 딴 책들은 눈에 안 뛸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매절은 서점이 책의 판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횡포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이 좋은 책을 10%정도 수수료를 더 받고 매절하여 많이 팔려고 하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50%이상의 수수료(55%까지 되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를 받고 매절하여 파는 경우다.
현금이 급한 영세출판사에서 자금 회전을 위해 서점에 매절을 부탁해올 경우 정가의 50%정도에 서점에서 사들인다. 이런 책을 앞서 말한 적극적인 판매방식으로 소화해내면 서점의 이익은 막대해진다.
이렇게 매절되는 책은 대부분 번역물이다. 인세부담이 없기 때문에 정가의 50%정도 받아도 출판사는 견딜 수 있다.
이런 책들은 내용이 좋고 번역이 잘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출판계의 생각이다. 출판계에서는『서점에서 이윤이 높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양서를 제쳐놓고 질이 떨어지는 책을 적극적으로 판매한다면 출판문화를 위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출판사들의 주장에 대해 서점 측은『양서이고 판매가능성이 높을 경우 매절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히면서『그러나 매절을 해주지 않는다고 책을 의식적으로 잘 진열하지 않는 일은 없다. 서점도 독자들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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