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이장욱씨 22일 '사진기자론' 강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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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9.11 테러 때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타워가 무너져내리는 모습. 도망치는 인파를 거슬러 테러현장으로 향하던 이 기자는 마침 전날 테니스 경기를 취재한 덕분에 400㎜ 망원렌즈를 갖고 있어 이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고 했다. 퓰리처 속보사진 부문 수상작.

▶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열린 ‘브즈카쉬’ 장면. 폴로를 연상케 하는 브즈카쉬는 말을 탄 출전자들이 머리를 제거한 송아지의 몸통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거친 경기다. 이 기자는 전장(戰場) 뿐 아니라 주변 난민의 생활상도 카메라에 담았다. 퓰리처 기획보도사진 부문 수상작.

"사진은 제 삶이에요. 제가 찍은 사진들이 쌓이고 쌓여서 저 자신이 되는 거죠."

2002년 퓰리처상 2개 부문을 받은 미국 뉴욕 타임스의 사진기자 이장욱(37)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 등 분쟁지역과 재해현장을 생생히 포착한 사진으로 유명한 이씨의 삶이 평탄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에게 세계적 언론상인 퓰리처상의 영광을 안겨준 것도 테러로 무너져내리는 세계무역센터(속보사진 부문),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로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난민(기획보도사진 부문) 등 신체적 위험을 담보로 얻어낸 사진들이었다.

"아내가 그래요. 차라리 바람을 피우는 게 낫겠다고, 사진과 사랑에 빠졌으니 화를 낼 수도 없다고…. 제가 취재를 떠날 때마다 너무 힘들어 하죠. 미안하고 또 고마워요."

한국언론재단 초청으로 방한해 2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강연회를 여는 이씨는 "뉴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한쪽 어깨에 카메라 가방을, 다른 어깨엔 컴퓨터 가방을 메고 죽자사자 달려갈 수밖에 없는 사진기자의 운명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중앙대(건축공학과)를 한학기 만에 중퇴하고 1986년 이민길에 올랐다. 낮엔 막노동꾼.웨이터로 일하며 밤에 대학을 다녔다. 처음엔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다. 뉴욕대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94년 뉴욕 타임스의 인턴기자로 들어간 그는 3개월 만에 정식기자로 발탁됐다.

"신참 시절 제 별명이 '토네이도(회오리바람)'였어요. 경력이 오래 된 40대 후반의 사진기자가 대부분인 뉴욕 타임스에 거구의 젊은이가 나타나 겁없이 휘젓고 다녔으니까요."

때마침 취재 일선에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된 것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 격이 됐다. 컴퓨터를 잘 아니까 남보다 일을 빨리 해내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30여 명이나 되는 뉴욕 타임스 사진기자 중에서 9.11 테러와 연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하는 정예팀에 선발될 수 있었다.

좋은 사진을 찍는 비결을 묻자 이씨는"카메라를 들이대기 전에 먼저 머릿속으로 많은 사진을 찍어보라" "열린 마음으로 마술 같은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내라"고 했다. "독자들을 드넓은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앞으로 중국 주재 기자를 지망해 중국은 물론 북한.동남아 일대의 사건 현장을 누비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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