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의 부동산 맥짚기] 미분양 덫 잊었나 … 시장 죽이는 고분양가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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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올해 하반기 이후 전국의 신규 아파트 분양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이 싼 신규 아파트에 시세차익을 노린 가수요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오산 세교신도시에서 분양 중인 한 아파트 견본주택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달 분양한 서울 반포 아크로 리버빌 2차분 아파트의 일부 평형 분양가가 3.3㎡당 약 5000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해 화제가 됐다. 주택경기 호황 때에도 엄두를 못냈던 고(高) 분양가 마케팅으로 100% 분양 실적까지 올려 부동산가를 술렁거리게 했다. 아크로리버빌 2차분의 3.3㎡당 분양가는 평균 4130만원으로 몇 개월 전에 분양했던 1차분보다 무려 300만원이 높았다. 84㎡ 형을 기준으로 1억원가량 오른 셈이다.

 근래 들어 아파트 분양가 상승 기류가 예사롭지 않다. 요즘 대박행진을 하고 있는 서울 위례신도시 아파트 분양가 상승률이 가파르다. 5월에 분양된 한 아파트의 분양가는 3.3㎡당 1680만 원대였는데 이달 초 분양분은 1795만 원으로 무려 115만 원 올랐다. 경기도 화성의 동탄2신도시도 같은 분위기다. 최근 분양된 시범단지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분양가는 3.3㎡당 1105만 원. 같은 지역의 올 상반기 분양 분(3.3㎡당 950만원)보다 16.3% 비싸다.1년 전 분양분과 비교하면 200만원이 높다. 대구에서도 분양가 상승바람이 거세다. 연초에 3.3㎡당 1019만 원대였으나 최근 1125만원으로 10.4% 상승했다.

 이런 양상은 전국적인 현상으로, 7월이후 분양가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다.대한주택보증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서울의 경우 3.3㎡당 평균 분양가는 7월 1874만원에서 9월 1940만 원으로 3.5% 올랐고 수도권도 같은 기간에 1294만원에서 1329만원으로 상승했다.

 분양가가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주택시장 분위기가 좋다는 의미다. 값을 올려도 분양이 잘 된다는 말이다. 특히 호황기에 분양가가 오르면 기존 아파트 값도 덩달아 뛰게 된다. 이는 과거에 수없이 벌어졌던 현상으로 업체들은 이런 국면이 전개되길 갈구하는지 모른다. 반대로 침체기에는 분양가 상승이 주택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기존 아파트와 시세 차익이 줄어들어 청약 열기가 수그러들게 된다. 전매차익이 없어지면 당연히 바람잡이 가수요도 사라져 시장 분위기가 시들해질 수 있다.

 우리의 경기상황은 어떤가.

 위례신도시를 비롯한 몇몇 지역의 청약열기만 뜨거울 뿐 전반적으로 미진한 상태다. 근래 들어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의 약효마저 힘을 잃어 시장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분양가를 계속 올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분양가 수준을 냉정히 생각해볼 때 인 것 같다.

 아무리 인기지역이라도 분양가격을 기존 아파트 값 이상으로 올리면 분양이 순조로울 수 없다. 경제 지표나 관련 요인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고 분양가 기류는 주택시장 회복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때 업체들이 분양가를 터무니없이 올렸다가 미분양 덫에 걸려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잘 알 것이다. 다시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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