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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명견인가 맹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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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나라에서 명견으로 치는 진돗개에 대해 한 외국인이 혹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개가 멋대로라는 것이다. 주인의 명령도 받지 않은 채 외부인을 공격하는 건 명견의 제1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난폭성을 드러낸 것이며, 그건 명견이 아닌 맹견의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가 이처럼 흥분하는 이유는 강원도 대관령에 있는 어느 목장을 방문했을 때 나무 뒤에서 돌진해 온 진돗개의 기습을 받고 쓰러진 경험 때문이다. 그는 곧장 나타난 주인의 고함이 없었더라면 큰일을 당했을 공포의 순간을 설명한다. 만약 그 상황에서 진돗개가 아닌 셰퍼드였다면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셰퍼드는 처음 본 외부인을 감시하기 위해 요란하게 짖으며 주인의 명령을 기다릴 거라고 한다. 명견은 주인의 지시를 받지 않는 공격을 자제하며, 그래야만 충견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이다.

어떤 조련사의 의견도 부분적으로는 이 외국인과 일치한다. 진돗개를 훈련시킬 때 가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한 가지 상황을 주면 그 훈련에 열중하다가도 다른 몇 가지를 스스로 판단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너무 영리해 조련사의 지시가 떨어지기 이전에 자신이 알아서 해버린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만 행동하도록 훈련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셰퍼드는 조련사가 한 가지를 지시하면 그것에만 집중하며 쉽게 길들여진다.

우리나라 진돗개가 셰퍼드와 같은 세계의 명견으로 등록하기 위해 무려 10여 년 동안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왔다. 보신탕 먹는 나라에 무슨 명견이 있느냐는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우리의 삶에 차지하는 애완견의 문화가 꽤 깊다는 것을 세계의 동물 애호가들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어려움을 거쳐 진돗개가 지난해 이맘때 세계애견연맹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임시견종으로 등록됐으며 지금은 마지막 관문인 정식 공인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혈통 관리와 보존을 위한 각종 제도와 시스템에 이상이 없음을 최종 확인받고 명견으로서의 이상적인 형상을 지켜나갈 규정이 준수되고 있는지도 점검받는다. 국제표준에 맞는 명견의 자격을 획득하기가 이처럼 험난하다.

이 과정에서 지적받고 있는 진돗개의 단점은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스스로 판단해 상황을 종료시키는 행위다. 진돗개뿐 아니라 다른 토종 개들도 마찬가지다.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개와 인간의 밀착 관계는 숱한 전설과 미담으로 그려져 왔고 충견.명견의 정절과 인내도 문학과 회화 등에 녹아 있다. 사냥하거나 집 지키는 개들도 그 목적에 따라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통번식을 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국의 토종개는 그들이 태어난 지역 특성 사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어느만큼 영향을 주고받았을까에 대한 나의 궁금증이 커진다.

명견에겐 분명히 사람에게 유용한 능력의 유전자가 농축되어 있다. 그들에겐 배반도 없고 반역도 없으며 오직 충성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민중의 지팡이나 공복임을 선언했던 일부 정치인은 그 자신이 국민의 충견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치인의 인격을 명견의 경탄할 만한 능력과 비교해 세일한 셈이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고 큰소리만 치는 정치인을 보면 이건 분명 국민의 충견이 아닌 맹견일 뿐이다. 맹견에 물릴까봐 모두 피한다. 누가 충견이고 누가 맹견인지 본인들도 모르는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누구는 어느 세도가의 충견 등으로 불리면서 그 의미가 확 달라져 버린다. 이때의 충견은 아부꾼이요, 높은 데서 시키는 대로 하는 정치인으로 격하된다. 서구 언론이 블레어 영국 총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부시 미국 대통령의 충견으로 표현할 때와 같은 분위기다.

막무식 싸움꾼 같은 정치인이 자꾸 늘어난다. 국민의 명견이 되기 위한 국제표준도 무시한다. 국민의 이성과 감정을 헤아리며 좇아가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충견을 국민은 기다린다.

최철주 월간 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