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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여유] 현대백화점 하원만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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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 사대(射臺)에 올라섭니다. 힘껏 활을 당긴 뒤 놓으면 화살은 정적을 깨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마침내 과녁에 꽂힐 때의 청량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현대백화점 하원만(53)사장의 '국궁 예찬'이다. 그는 부사장 시절 한 회사 직원의 권유로 국궁을 시작한 뒤 5년째 사직공원 뒤편 인왕산 길목에 자리잡은 황학정(黃鶴亭)을 찾고 있다.

황학정은 대한제국 시절인 1898년 고종이 경희궁 안에 지은 활터로 하사장과 같은 국내 궁사들에게 있어 '국궁 1번지'로 통한다. 황학정이란 이름은 임금이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이 누런 학을 닮았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하사장은 "국궁은 생소하고 접근이 힘들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며 "활을 당길 때 한껏 기를 모으고 쏠 때 기를 풀어주면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의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 효과 외에도 하사장을 잡아 끈 것은 국궁을 통한 정신수양이다. 황학정에는 대기업 오너부터 실직자까지, 60대 할머니와 20대 젊은이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지만 서로에 대해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는 공통적이다.

일단 사대에 올라서면 사회적 지위는 무시된다. 연령이 높은 사람을 우대하고 다음으로는 활을 쏘는 실력을 본다고 한다.

"처음 국궁을 시작할 때는 화살 옮기는 일부터 했습니다. 활을 잡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경험을 하면서 서비스업 종사자로서의 자세도 가다듬곤 합니다."

국궁은 서양활이나 일본.중국의 활보다 크기는 작지만 탄력이 좋아 화살은 더 멀리 나간다. 크기가 작은만큼 말을 타고 쏠 수도 있는 등 활용도가 높다.

이런 국궁의 특징이 평소 '내실 있는 백화점','작지만 감동적인 서비스'를 강조하는 하사장의 지론과 맞아떨어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그는 현재 더 멀리 날아오르기 위해 정성들여 활을 당기듯 내실을 다지고 있다고 한다.

하사장은 "올 한해는 고객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시기로 생각하고 있다"며 "조급한 마음에 사은품과 경품을 남발하는 불합리한 경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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