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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을 '참고인'으로 부르는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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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교통사고 피해자를 진단한 의사가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자문 의사였다는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의사들과 공모한 것 아닌가.”

 ▶현대해상 정락형 상무=“자동차보험 담당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 상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리 보내준 신문요지(‘화재보험 보험금 지급회피 관련 경영 책임’)에 맞춰 답변을 준비해 왔는데 엉뚱한 질문이 나와서다. 이 회사엔 화재보험 등 일반보험 담당과 교통사고 담당이 나뉘어 있는데, 일반보험담당자에게 교통사고를 물은 것이다. 마구 증인을 신청하다 보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지난해 정무위 국감 때와 판박이 실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은 수입차 업계의 부품가격 담합에 관해 질문하며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증인석에 세웠다. 이 회사는 한성자동차 계열사이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임대업체로, 자동차와는 무관하다.

 정무위·산업통상자원위는 해마다 기업인 증인들을 무더기로 부르는 단골 상임위다. 올해 국회가 출석을 요구한 기업인 증인은 정무위 44명, 산업위 30명, 교육문화체육관광위 12명 등 131명이다. 지난해의 기업인 증인수(150명)보다 다소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꼼수’가 숨어 있다. 상당수 기업인을 증인이 아닌 참고인으로 불렀다.

 예컨대 원효성 BC카드 부사장의 경우 증인신청리스트에 있다가 의혹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참고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해명할 기회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전체 참고인 180명 중 기업인은 20명(11.1%)이었지만 올해는 164명 중 37명(22.6%)으로 비중이 두 배로 뛰었다.

 증인과 참고인은 법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참고인은 불출석 시 동행명령 요구를 받거나 위증죄로 처벌받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증인이든 참고인이든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출석을 요구하는데 거절할 기업인은 많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참고인으로 출석하더라도 답변 준비부터 출석까지 상당한 시간이 들기 때문에 부담은 마찬가지”라며 “기업인 증인 채택을 줄이겠다면서 참고인으로 돌리는 건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답변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장시간 기다리다 돌아가는 기업인 증인들을 보면서 비판이 나오자 이를 피하기 위해 참고인으로 바꿔 부르는 ‘꼼수’”(바른사회시민회의 김영훈 경제실장)란 지적도 나온다.

 국정감사의 1차 목적은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다. 의원들이 이목을 끌거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기업인들을 국감장의 들러리 취급하는 풍경은 올해도 여전하다.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