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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시조의 형식은 악기와 같다. 악기는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소리를 낸다. 같은 악기를 다루는데도 천차만별의 소리가 나듯 시조의 형식이 비록 단조로운듯 하나 그 운율은 쓰는 이에 따라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투고되는 작품 가운데는 더러 기성작가의 흉내로 심한파격을 시도하는 경우를 보는데 파격은 항아리에 물이넘치듯 시조의 형식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시조를 그르치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어머니』 『사모곡』 『노모상』은 우연하게도 <어머니>를 주제로 삼고 있어 한데 묶어비교해 보기로 한다. 작품의 우열을 가리면 『어머니』 『노모상』 『사모곡』 순이 되겠는데 『어머니』는 시의 흐름이 아주 곱고 자연스러우나 첫수와 둘째수의 종장이 모두 상징으로 끌고 가 여운은 있지만 강렬하게 닿는 것이 없고 『노모상』은 <백발에 뭉쳐진 일생>이 못하는 <늙음>은 있지만 <어머니>는 한곳도 눈에 띄지 않는다.
『사모곡』은 제목 대로라면 어머니를 생각하는 시가 되어야 할텐데 우리의 여인의 정한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도 낡은 어조와 가락으로 다시금 비교해 보기를.
『해당화』는 꽃을 대상으로 노래할 때 쓰기쉬운 상투적 표현들을 잘 비켜서고 있다.
그만큼 자기가 하고자하는 말을 정확하게 해낸다는 것은 시를 잘쓰는 첫 걸음이다.
『저녁』은 괜한 한문투어를 많이 쓰는 것이 걸린다. <봉창><홍조><미각> 따위가 그것인데 이렇게 돌처럼 굳은 말을 쓰면 시 천체가 굳는다.
『고향』은 ①고향의모습 ②유년의 기억 ③찾아가고픈 생각으로 잘 구성했으나「티 없이 소박한 새 하얀 꿈」에서 형용사를 세번이나 겹쳐쓰는 낭비는 너무 심하다. 좀더 힘들여 시를 써야겠다. 『잃어버린 명동』은 하나의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명동이란 말은 문명이 가져다준 이름인데 그것마저 모습이 바뀌는 현대인의 슬픔을 담고 있다.
『연화송』 은 시룰 써야 할<까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연꽃을 두고 이만한 것쯤 생각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소재선택에서부터 더 많은 궁리가 있어야 한다.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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