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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법치, 중국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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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23일 ‘의법치국(依法治國)’을 결정한 직후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국 기업인들과 나눈 대화 몇 토막.

 -중국의 법치를 앞두고 기업들도 비상 아닌가.

 “특별히 준비하는 건 없는데…. 부패 막으려고 하는 것이니까.”

 -법과 규정을 강조하면 비즈니스에 영향이 있을 텐데.

 “이전보다 까다롭기는 하겠지만 아직도 공무원들과 관시(關係)는 무시 못한다.”

 -비즈니스 할 때 관련법을 보나요.

 “그럴 시간이 있나요. 그건 법 관련 부서에서나….”

 다음날 한 중국 변호사와 나눈 대화.

 -중국 법치가 한국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두 가지 문제. 하나는 법에 보장돼 있어 가만 있어도 해결될 일을 꼭 관시를 이용하고 돈을 줘 해결하려고 하는 점. 또 하나는 아무리 센 백을 써도 불법이어서 안 되는 일을 굳이 돈 주고 관시 이용해서 해결하려다 쪽박 찬다는 점.”

 -기업들이 왜 그럴까.

 “아직도 중국 법이 관시 아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그럼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법치에 혹이 하나 더 붙었다. 여론이다. 앞으로 비즈니스에 소비자 의견, 즉 민의를 반영하지 않으면 이전보다 훨씬 어려울 거다. ”

 이 변호사가 미리 알고 얘기했는지 모르겠으나 바로 오늘(28일) 베이징 시 정부에서는 파격적인 행사가 열린다. 시내 대중교통 가격을 조정하기 위한 공청회다. “그게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인들에겐 과거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교통요금이든 공공시설 입장료든 당이나 정부가 결정하면 그대로 따르던 게 바로 엊그제다.

공청회 대표로 참가할 덩롄차이(鄧連才)라는 시장 상인이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마치 정부의 싱크탱크가 된 느낌”이라며 흥분한 것도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덩은 공청회에서 현재 4마오(약 68원)인 시내버스 요금은 인상하되 승차 거리를 세분화해 요금 상승폭을 조정하자는 의견을 낼 예정인데 이미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시장 상인의 평범한 의견 하나가 수도 행정에 반영되는 ‘시정 혁명(?)’이 일어날 판이다.

법치를 강조한 마당이라 이 같은 민의 수렴은 베이징에서 끝나지 않고 조만간 전국으로 확산될 게 뻔하다. 한 걸음 더 나가 법치 강화를 위해 민의(民意)와 민지(民智)·민주(民主)라는 ‘삼민(三民)’까지 부상하고 있다. 민족·민권·민생이라는 쑨원의 삼민주의를 대체할 시진핑의 신(新) 삼민주의의 출현이다. 여론(민의)과 각계 각층의 역량(민지), 그리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행정(민주)으로 중화 부흥을 이루겠다는 전략적 사고다. 한국에 중국의 법치는 경제든 외교든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