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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깊어지는 갈등의 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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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유럽연합(EU) 헌법 비준 거부에 호되게 당한 유럽인들은 미국의 전문가.관리들로부터 선의의 충고를 받고 있다. 앞으로 유럽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곧 다가올 EU의 종말에 대해 어떤 적절한 선언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등에 관해서다.

워싱턴 포스트의 로버트 J 새뮤얼슨은 이렇게 진단했다. "유럽은 서서히 퇴물이 되어가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의 강력한 우방이 아니다. 유럽이 미국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점은 강력한 우방이라면 당연히 기여할 자세를 갖춰야 하는데 유럽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EU 헌법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과 같은 '광대하게 확대된 단일 유럽'은 없을 것이다. 단지 현재의 EU가 보여주고 있는 결집된 형태의 연합만 남게 될 것이다. EU는 전례 없는 '주권 국가들의 연합'이라는 실험을 계속하겠지만 그 미래는 불투명하다.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EU 곁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퇴임 이후의 '시대가 불투명한' 미국이 서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의 헌법 비준 거부 이후 EU는 자신의 미래를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유럽의 통합은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대학.연구소에서 일하거나 워싱턴에서 정치와 정책을 담당하는 미국인들은 유럽에 대해 세 가지를 비난한다. 첫째는 미국인들이 낡고 비효율적인 경제.사회 모델로 여기는 것에 유럽이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유럽은 군사력 강화에 예산을 많이 쓰지 않고 있어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일부 유럽인들이 유럽은 미국과 경쟁하거나 미국에 대해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워싱턴은 이런 유럽인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니컬러스 번스 미 국무부 차관은 "마찰이 있을 것이며 (경쟁을 원하는 유럽인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높은 실업률, 노동시장의 경직성, 창업을 가로막는 관료주의 장벽,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개혁모델 창출 실패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다. 힘의 다핵화 대 집중, 미국의 힘에 대한 균형이라는 이슈는 여러 번 거론돼 왔다. 그러나 군사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논의가 없었다. 유럽은 미국에 비해 이 부문에 많이 지출하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는 유럽이 왜 더 큰 군사력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이 위협이 되고 있는가. 테러리즘인가. 서유럽의 거의 모든 정부는 테러가 군이 아닌 경찰이나 정보기관의 일로 생각하고 있다. 파괴되고 불안한 이라크를 생각할수록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더욱 확신하고 있다. 미국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즘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동안 유럽의 경찰은 테러리스트를 체포하고 투옥시켰다.

그 밖에 어떤 위협이 있는가. 민족주의 또는 확장주의 정책이 부활한 러시아인가. 아니면 위기의 중국인가.

선진 무기를 생산하고 선진 항공산업을 갖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적 역량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유럽은 모두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이 더 큰 군 조직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측 시각에서 보면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하지만 만약 미국의 정책이 국제 관계의 안정을 해치고 테러리즘과 갈등을 만들어 낸다면 유럽이 왜 도와야 하는가. EU 동맹국들 대부분은 그렇게 믿고 있다. 이런 점 역시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의견차이의 하나가 된다. 미국이 홀로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따라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