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화의 근대화 |지원바라기 앞서 체질강화 노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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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의 문화는 아직도 다분히 구호적이고 표어적인 문화로 굳어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화장실에서부터 길거리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각종 구호와 표어가 넘쳐난다. 『꽁초는 재떨이에』『한발짝 앞으로』에서 『질서를 지킵시다』『휴지를 버리지 맙시다』등등―.
한가지 아쉬운 것은 구호나 표어를 통해 어떤 목표는 잘 내세우면서도 그 목표의 실천이나 과정에 대해서는 모두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출판문화의 육성」만해도 그렇다. 그동안 독서주간만 되면 『책속에 길이 있다』는 등의 표어가 수없이 나붙었고 출판문화의 육성방안을 「모색」하기위한 세미나도 여러번 열렸다.세미나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출판문화는 육성되어야 하고 출판문화의 육성이 바로 민족문화창달의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그동안 눈에 뜨이게 달라진 것도 없다.
지난 30여년동안 소풍날의 보물찾기 처럼 끝 없는 모색의 되풀이다.
『인쇄공정이 현대화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인쇄시설은 80여년전 배재학당시절이나 비슷하다. 『유통구조가 근대화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대문 덤핑시장은 여전히 성업중이고 책 몇권값 수금하기 위해서 부산으로, 목포로 영업사원이 출장을 나가야 한다.
이런 현상들도 따지고 보면 목표만 내세우고 그 목표의 실천에 대해서는 비교적 무관심한 우리네 습성때문이다. 물론 핑계는 있게 마련이고 출판문화계로서도 할말은 많다. 정부의 지원이 아쉽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워낙 책을 읽지 않는다―등등. 백번 옳은 얘기다.
그러나 이런 저런 핑계만 늘어놓고 팔짱만 끼고 앉아서 누가 밥을 떠먹여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정부의 지원도 좋지만 지원에 앞서 출판계 스스로의 노력이나 각오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대형유통기구만해도 그렇다. 서로 속셈이 달라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얘기도 옳은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도록하는 노력은 얼마나 기울였는지 그것도 의심스럽다. 제과업자들은 껌 포장지 하나를 고안하는데도 몇번씩 고쳐가면서 눈에 잘 뜨이는 포장지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책표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들이 얼마나 고심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모두들 너무 쉽게 책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 출판문화도 이제는 구호만 요란한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지원만 바라는 「응석받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가 육성해주고 지원해주기를 기다리기에 앞서 제스스로 갈등과 충격을 이겨나가면서 자기체질을 강화해 가는 노력과 각오가 필요하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정보와 지식은 출판문화의 근대화를 재촉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파하기위한 수단으로는 출판물 이상의 것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고 있다. 거창하게 출판문화의 사명까지 들먹일 생각은 없지만 출판문화의 꽃이 피지 않은 곳에 문화의 발전도 없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광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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