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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정 3년이면 미식가도 인정하는 미슐렝 2스타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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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16면

파리 6구 페랑디 정문에 걸린 학교 안내 현수막.

전식(Entree)·본식(Plat)·후식(Dessert)을 제대로 차려 먹는 일을 의식으로 여기는 나라, 음식 맛뿐 아니라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그릇·서비스·식사예절까지, ‘배를 채우는’ 행위를 문화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나라. 프랑스가 ‘미식(美食)의 나라’로 꼽히는 이유다. 이런 프랑스에서도 국립 요리학교 페랑디(Ferrandi)는 최고의 셰프 양성기관으로 꼽힌다. 입학이 어려워 ‘요리계의 하버드’라는 평을 듣는 곳이다.

‘요리계의 하버드’ 프랑스 국립요리학교 페랑디

지난 15일(현지 시간) 파리 6구에 있는 페랑디 캠퍼스. 취재진에게 학교 측은 반도체 공장 방진복 같은 흰색 가운부터 내밀었다. 오드리 자네 페랑디 홍보담당은 “조리 공간은 항상 가장 청결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니 불편해도 참아 달라”고 당부했다.

제빵 교실에 들어서자 대형 조리공간이 중앙 칸막이에 의해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양쪽에서는 흰색 셰프 가운과 모자 차림 학생들의 빵 반죽이 한창이다. 두 클래스의 학생들은 한눈에도 나이 차가 나 보였다. 자네 홍보담당은 “왼쪽 교실은 고교 졸업생을 위한 1년 코스, 다른 쪽은 직장인들이 전직(轉職)을 위해 지원한 코스”라며 “빵집을 내고 싶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직을 위한 코스의 구성원은 은행원부터 교사, 경찰, 건설회사 직원, 부동산업자까지 다양하다. 이곳에서 만난 경력 10년차 한국인 제과사 공보경(32·여)씨는 “케이크는 제과의 영역이지만 한국에서 케이크는 주로 빵집에서 팔리기 때문에 베이커리 오픈을 위해 제빵 과정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제빵·제과 클래스 학생들이 교내 레스토랑에 보낼 빵과 과자를 만들고 있다. 같은 시간 마케팅 전공 학생들은 레스토랑 주방에서 서빙 준비를 하고 있다.

주당 35~40시간 실무 강의 … 요리사 마음가짐도 전수
3층 교실에서는 흰색 요리복 대신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3년간의 고등학교 과정에선 요리 수업뿐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수학·과학 등도 배운다. 이론 교육 땐 반드시 넥타이를 매고 재킷을 걸쳐야 한다. 브루노 드 몽테 교장은 “페랑디는 요리 기술뿐 아니라 요리사의 마음가짐도 가르치는 곳”이라며 “복장 규정을 통해 요리사가 지켜야하는 여러 가지 규율을 준수하는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베이커리 2곳, 제과 실습실 7곳, 주방 9곳 등 모두 20여 곳의 조리공간이 갖춰져 있다. 정규학교인 고교·대학과정 학생 1500여 명, 해외에서 온 유학생 200명, 일반인 코스 2000여 명 등 모두 3700여 명이 셰프를 꿈꾼다. 제빵·제과 외에 데코레이션 디자인, 마케팅 등 30여 개의 과정도 함께 개설돼 있다. 학비는 대학 과정의 경우 연간 7500유로(약 1000만원)지만 전직 코스 같은 무료 강좌가 절반을 넘는다. 가장 인기가 높은 제빵 코스의 경우 올해 입학 경쟁률이 17대 1에 달했다.

수업은 주당 35~40시간 진행되는데 철저히 실무 위주다. 브루노 드 몽테 교장은 “우리의 교육철학은 ‘행동으로 배운다(Learning by doing)’”라며 “수업의 70% 가량이 주방이나 연구실, 교내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겸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교사의 요리 솜씨를 학생들이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도록 수업 당 학생 수가 12명이 넘지 않도록 커리큘럼을 짠다.

지난 15일 페랑디 본관에 삼성전자 주방가전으로 꾸며진 ‘삼성 키친’에서 일일 강사 셰프로 나선 에릭 프레숑(오른쪽 위 사진 중앙)이 학생들과 함께 요리를 만들고 있다.

만든 음식 모두 교내 식당서 판매, 저녁은 두 달전 예약해야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만들어낸 빵·디저트·요리는 모두 교내 레스토랑 두 곳에서 판매된다. 레스토랑 ‘르 프리미에’에서는 고교 과정 학생들이 만든 요리가, ‘르 28’에서는 대학과정 학생들이 만든 음식이 판매된다. 각 식당의 홀 서비스도 마케팅 과정 1학년 학생들이 실습을 겸해 제공한다. 두 식당의 차이가 있다면 르 프리미에에서는 기존 전통 프랑스 요리가, 르 28에서는 창의성 넘치는 음식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두 곳 모두 파리 시민과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식사를 하려면 점심은 한 달, 저녁은 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다. 파리 시내의 미슐렝 1스타 레스토랑의 한끼 식사는 1인분에 45유로가 넘는데 이곳에서는 25~30유로에 비슷한 품질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자네 홍보담당은 “미슐렝 스타 셰프급 교수들의 지도 하에 2년 이상 훈련한 학생들의 솜씨이기 때문”이라며 “르28 3학년 학생들의 요리는 미식가들 사이에 미슐렝 2스타급으로 인정받는다”고 귀띔했다.

학생들은 실무 공부를 한 뒤 반드시 현장 인턴십을 거쳐야 한다. 학교 측은 학생의 적성, 전공, 장·단점, 장래 희망을 고려해 레스토랑·베이커리·호텔 등의 인턴십 과정과 연결해준다. 인턴십까지 마치면 취업·창업에 나서는데, 프랑스 요식업계에서 페랑디 출신은 인기가 높다. 브루노 드 몽테 교장은 “프랑스 전통 요리부터 창의성 넘치는 조리법 개발까지 풍부한 경험을 쌓아 일류 셰프가 될 자질을 갖춘 다음 졸업한다”며 “이들이 각국에 진출해 프랑스 미식문화를 확산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프랑스) 글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사진 제공, 취재협조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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