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잡는 「엘살바도르 통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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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쟁터를 취재하는 종군기자들은 온갖 위험을 무릎써야 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건다. 특히 중남미의 엘살바도르처럼 게릴라를 상대로 하는 전선없는 전쟁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의 한복판에 있는 카미오 레알 호텔에는 엘살바도르사태를 취재하러 미국·유럽 등지에서 몰려든 신문·방송기자, 카메라맨 등 1백여명이 투숙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호텔에서 투숙할 뿐 아니라 식사도 같이하고 아침·저녁호텔로비에 모여 돌아가는 사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마치 시험기간동안의 대학기숙사풍경과 흡사하다.
이들이 정보를 얻는 중요한 수단은 정부군에서 파견한 브리핑장교의 입과 좌익게릴라들이 운영하는 벤세레모스방송의 보도내용이다. 그러니까 양측의 선전자료가 중요한 뉴스원인 셈.
그나마 정부군 브리핑장교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는 『노 세』(나는 모른다)가 대부분이고 좌익방송은 과장보도이기 일쑤다.
종군기자들은 취재자동차에 『국제기자단』이라고 스페인말로 써 붙이고 『보도요원, 쏘지 마시오』라는 문귀가 들어있는 T셔츠를 입고 다니지만 소용이 없다.
3월 하순 동부지방으로 취재나갔던 미국NBC방송의 취재반 3명이 총격으로 부상했고, 뉴스위크지의 프리랜서 사진가자 2명은 신케라마을에서 폭발물 파편에 맞아 다리가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런 종류의 위험때문만이 아니라 정부군이나 좌익게릴라측의 비협조때문에 현장접근이 어렵다.
산악과 정글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좌익게릴라들은 그들의 본거지가 탄로날까봐 취재기자의 접근을 꺼린다.
정부군은 그들대로 잔악행위가 폭로될까봐 취재기자들은 전투현장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외국특파원들은 정부가 발행한 특별신분증을 가지고 있지만 병사들이 읽을 줄 몰라서 제지당하기가 일쑤다. 어느 특파원은 정부발행 신분증이 소용없자 마침 갖고 있던 조금은 특이해 보이는 콜럼비아대학교 학생증을 보이고 통과했다.
미국언론기관의 특파원들은 미국정부와 엘살바도르정부로부터 좌익게릴라들을 동정하는 편파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한 백악관보좌관은 『정부군이 게릴라를 죽이기만 하면 텔리비전에 그 모습이 나온다』고 불평했다.
이같은 보도방향에 대해 특파원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현장을 보도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엘살바도르에서 수년동안 특파원생활을 해온 한 미국기자는 『좌익게릴라가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군이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그대로 보도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특파원들에 대한 본사의 독촉 또한 보도방향을 그르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현장감 있는」기사와 사진을 보내라는 요구때문에 총소리만 몇방 나도 그것은 곧 정부군과 게릴라간의 격렬한 충돌로 과장된다.
워싱턴 포스트의 「조앤·오망」특파원은 『현재 전투는 소강상태다. 그러나 생생한 기사를 써야하기 때문에 무언가 크게 진전되는 것처럼 보여야한다』고 실토했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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