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재량권 주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금융기관의 대출에 얽힌 부정사건이후 금융계의 정화작업이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기관은 돈을 다루는 곳이고, 그래서 성실과 신용의 척도라고 인식되고있다.
금융기관이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한다고 누구나 믿고 있는 것이다.
경영원칙은 정직과 공정에서 벗어나서는 안되고 임직원은 모든 근로자의 거울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할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있다.
때문에 금융기관에서 부정이 일어나면 가혹한 지탄을 받게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은행을 감독해야할 재무부가 앞장서서 부정의 소지를 없애도록 지시하는 것도 당연하다.
최근 재무부가 금융기관장회의를 소집하여 대출부조리의 추방지침을 강력히 시달하고 그에 따라 금융단이 각 은행의 지점장급등으로부터 각서를 받고있는 것도 그런 테두리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또다시 부정을 저지르면 인사조치를 한다든가, 관련기업을 제재한다든가, 하는 경고를 발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것 같다.
또 이러한 일련의 대응책은 금융기관에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것으로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이번에 재무부가 취한 조치를 두고, 그 동안 밝혀왔던 금융자율화 방침과 어떻게 조화시켜 해석하느냐에 곤혹을 느끼게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예컨대 재무부는 직상급자에까지도 책임을 묻겠다고 하고 있지만, 금융기관인사의 부간여원칙과 상치(상치)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부정사건관련자는 형사적인 책임을 지게되므로 금융기관자체에서 해임하는 것은 항례적인 순서다.
그 다음 문책의 범위를 어느 선에까지 하느냐도 당해 금융기관이 알아서 처리해야할 문제다.
이번에 재무부가 시달한 내용은 금융자율화를 전연 인정하지 않은 과거의 방식에서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적어도 금융자율화로 나아가려면 재무부는 금융제도의 개선을 위해 진력하고 금융기관의 사고는 은행감독원의 기능을 활용하는 선에서 대책을 강구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점장급의 각서같은 고식적인 방법은 한낱 형식상의 것일 뿐, 실효를 거두는데 아무런 보캠이 되지를 않는다.
말썽이 난 대출부조리의 소지를 일소하려면 근본적으로 지점이면 지점다운 운용을 하도록 업무추진비등을 현실에 맞게 책정해야 한다.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 각은행의 경쟁속에서 타점포롤 누르려면 충분한 업무추진비의 뒷받침이 있어야하는데도 그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커미션을 받는 사래가 일어나는 것이다.
일률적인 것은 아니지만 C급지 지점장의 판공비가 월10만원 미만, 업무추진비가 월10만∼30만원선이라는 것은 업무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유명무실한 업무추진비라는 것을 주어놓고는 고객을 유치하고 경영실적을 올리라는 것은 애당초 말이 되지를 않는다.
현실적인 여건개선을 실현하도록 재무부가 종용하고 금융기관의 재량권행사를 북돋는 것이 금융정상화의 정도가 아닌가.
행정적인 규제측면을 강조한 재무부의 지시가 은행의 자율경영과 상반되어서는 안된다.
금융자율화는 분임과 권한을 금융기관에 일임하고 업무쇄신방안을 스스로 찾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일부의 사고가 있다해서 금융자율화가 후퇴하는 듯한 행정지시와 각서의 남발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