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문화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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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1월 초순 동경국립문화재연구소 초청으로 50여일 동안 일본을 방문해 연구발표와 강연회 등을 갖고 6천3백여km를 여행하며 90여 군데의 유적유물을 견학, 취재할 기회를 가진 뒤 2월말 귀국했다.
인상에 남는 얼로는 전차 안에서도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이 많고, 2, 3일이 지나도록 구두에 먼지가 별로 끼지 않는다거나, 와이셔츠가 검게되지 않는다거나, 거리에 휴지가 없는 것이나, 어떤 상점이나 직장에서도 친절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나의 입장으로서는 특히 유적지에 가보면 초석 하나 하나에도 금줄을 치고 보존에 만전을 기하고 있음을 보고 느낀바 컸다.
한국을「석물의 나라」라고 할 때 일본은「목조물의 나라」라고 할 만큼 과연 일본은 목조유물이 많다. 목탑과 목조 금당 등 고대 목조건물이 상당수 있으며 목조 불·보살 등 수백 구의 고대 목조조각이 보존돼 있다.
한국에도 당초에는 목조 물이 많았으나 내외 환란으로 모두 소실되었다. 일본도 그 동안 많은 국내전란으로 사원이 타 없어 졌다고 하나 일본의 경우는 워낙 목조 물이 많았고 외국으로부터의 침해도 없었으므로 오늘과 같은 많은 목조 유물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현지를 답사, 일본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정의한 바이지만 승려들의 묘탑인「석조부도」만 해도 한국에는 신라시대부터 석조부도를 건조하여 이후 각 시대를 통해 계속 조영되었으므로 고대부터 많은 유례를 보이고 있는데 일본은 한국과 같은 그렇듯 훌륭한 석조부도는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한국의 팔각원당형 석조부도와 같은 석조물은 아니더라도 이것을 목재로 건조한 유례를 보이고 있으니 예컨대 법강사 몽전과 광강사 계궁, 영산사 팔각당 등이라 하겠다. 한국에는 목조팔각당이 현존치 않으나 최근 경주에서 두 군데의 팔각당지가 발굴 조사된바 있어 중요한 유지로 주목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도 고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밀접하였던 것으로 특히 비조·나량·경도 등 초기 불교미술의 발상지를 살펴보면 삼국기 혹은 통일신라시대 각종미술의 양식과 기법이 그대로 옮겨졌음을 직감하게 된다. 고대문화의 시각이 한문과 불교로부터일진대 일본은 이렇듯 시원적 요소를 모두 백제에서 혹은 고구려와 신라로부터 전수했던 것이니 일본고대문화의 원류를 한국에서 찾아야됨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문화를 일단 수용한 뒤에 이를 충분히 소화시켜 명실공히 그들이 자랑하는 일본문화를 건설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에 문화를 전해 주었으며 우리의 것을 그들이 가지고 갔다고 하는 과거에만 집착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그들로부터 가지고 와야 되고 모호한 연대추정은 그들의 것을 참고해야 될 것으로 안다.
동경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이등 소장과 구야·상야씨 등 여러 학자와도 그랬고 현지조사를 함께 한 남석환·대서씨 와도 실물을 앞에 놓고 이야기 한 바이지만 우리의 고대문화를 좀더 정확히 많이 알려면 일본의 유적·유물을 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옥현 북 본시에서 만난 권오달 선생의『일본인은 문화를 승상하고 문화재를 보존할 줄 안다』는 이야기도 수긍이 간다.
정영호
▲1930년 생 ▲서울대졸 ▲문학박사 ▲단국대교수·박물관장 ▲한국미술사학회회장 ▲저서『신라석조부도연구』『한국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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