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산증인…기록사진 찍기 17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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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인들이 모이는 장소면 어디든지 나타나는 사진사가 있다. 문인들 사이에서 「우리 문단의 산증인」이라고 말해지기도하고 별명으로「문단감초」라고 불리기도 하는 프리랜서 카메라맨 금일주씨(40).
그가 좁은 회의장의 좌석사이를 비집고 누비면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문인들은 『어, 김형!』하면서 모두 스스럼없이 플래시 세례를 받아준다.
김씨가 지금까지 찍은 문인사진은 모두 3만 여장. 고 월탄 박종화씨의 모습에서부터 갓 데뷔한 신인들의 얼굴까지 김씨의 렌즈에 잡히지 않은 문인은 거의 없다.
김씨는 지난66년 경기일보 문화부기자 때부터 문인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당시 문화부에서 문인관계 기사를 쓸 때 문인들의 사진이 없어 애태우면서 취재현장에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나간 것이 시초가 됐다. 그후 독서신문·문학사상지로 직장을 옮기면서 카메라는 그와 더욱 가까와졌다.
「문학사상」지의 화보『창작의 밀실』을 맡으면서부터 김씨는 어느새 본격 카메라맨이 되었다. 땀이 많이 나 언제나 얼굴이 흥건하게 젖은 채 문인들을 따라다니는 김씨는 원래 소설가. 66년「현대문학」지에 단편『산령제』로 추천 받았고 그 동안 5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그런 김씨가 문인들 사진을 찍게되니 문인들의 기쁨과 슬픔·고뇌를 누구보다 잘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예지에 편집기자로 있으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까 우리문단에 기록이랄까 자료수집이 참 안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문인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그 사람들의 활동과 표정을 담아보자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70년부터 본격적으로 문인사진 찍기를 시작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사진은 우리 문단사를 기록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동화출판사에서 나온 한국단편문학전집 별책『사건으로 보는 소설 7O년 사』, 삼성출판사의 한국단편문학전집『70년대 작가들』의 사진은 모두 김씨가 제공했다.
『출판사들이 책을 만들 때 사진을 요청해 옵니다. 그때 문인들의 사진을 빠짐없이 마련해 줄 수 있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신춘문예시상식·각종문학상시상식·문인단체세미나·출판기념회 등과 문인단체선거·문인들의 집회에 김씨는 항상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문인들의 모든 것이 그의 사진에 담겼다. 그래서 그러한 사진이 필요하게 되는 출판사·문예지들은 으례 김씨에게서 사진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73년의 서정주-조연현씨 간의 문협 이사장 선출을 둘러싼 대결, 75년의 문인단식투쟁 등의 사진이 귀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중에는 아직 공개하지 못한 사진도 있습니다.』사건을 기록한 사진과 함께 그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문인들의 생활이 담긴 사진들이다. 거기에는 문인 각자의 기쁨·고뇌 등 그때 그때의 표정이 담겨있다. 마당에 앉아서 잡초를 뽑으며 작품을 구상하는 오영수씨, 노트에 깨알같이 초고를 쓰는 황순원씨 등의 사진은 김씨만이 포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진 찍기와 함께 김씨는 문인들의 육필 원고수집·육성녹음도 하고있다.
육필원고는 지금 삼륜차로 한차 가득히 될 만큼 모았고 육성녹음한 문인도 1백여 명이 된다.
출판사나 문예지들이 문인들의 육필원고를 보관하지 않는 것을 김씨는 안타깝게 생각했다. 특히 원고의 많은 부분이 수정·삭제된 경우에는 그 원고는 꼭 보존돼야 한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또 문인들의 육성도 언젠가는 필요해진다는 생각에서 카메라와 함께 녹음기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모았다.
『근대문학박물관 같은 것이 세워져야 합니다. 문인단체에서나 정부 당국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은 아무데서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요. 언젠가 그러한 박물관이 세워질 때 저의 자료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현재 김씨가 하고 있는 일은「한국문학」의 『작가의 1일』취재와 문예지의 요청에 따라 취재에 나서는 것이다.
프리랜서로서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이지만 보람을 느끼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사진들을 골라 전시회를 가져볼 계획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외로운 작업을 해온 김씨의 수확이 되겠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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