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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통계 실상과는 다소 거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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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자리를 부탁하신 적이 있습니까?』 작년에 정년퇴직한 55세의 김모씨에게 경제기획원 통계조사원이 찾아와 물었다.
『글쎄, 여러군데 알아는 봤는데 나이 먹었다고 누가 써주어야죠』라고 대답했다. 조사원은 그가 들고 있는 설문지의 실업자란에 ○표를 했다. 김씨는 작년도 우리나라 실업자 66만1천명의 한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만약 김씨가 심심풀이로 복덕방에 나가고 있다고 했다면 그는 취업자로 분류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알도리가 있어야지』라고 답변했다면 그는 실업자도 취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 인구로 처리된다. 노동인구에서 완전히 빠지는 것이다.
작년에 중학교를 졸업, 어느 희사 사환으로 들어간 정모군은 월급이 너무 적어 사표를 냈다. 딴데 가보았자 뻔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당분간 놀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실업자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취업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경제활동인구」로 처리된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이모군이 머리도 식힐겸해서 시골로 내려갔다. 아버지가 하는 비닐하우스일을 거들게 되었다. 그는 어제의 실업자에서 오늘은 취업자로 분류된다.
일흔 고개를 넘은 꾸부정한 시아버지가 며느리 가게를 봐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취업자가 돼 버린다.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구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만14세 이상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작년의 노동인구는 2천5백97만명.
여기에는 주부를 포함해 집안일을 돕고 있는 사람이나 학생·노인·불구자·군인·교도소수감자 등 정상적으로 노동을 할 수 없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들어있다.
전체 노동가능인구에서 이들 비경제활동인구를 뺀 것이 일터에 나갈 수 있는 이른바 경제활동인구인 취업자와 실업자의 총계다.
작년의 경제활동인구는 1천4백71만명. 이 가운데 취업자는 1천4백4만명으로 전체의 95.5%다. 실업자는 66만1천명으로 4.5%를 차지하고 있다. 4.5%가 바로 우리나라의 실업률이다. 당국은 작년의 실업률이 80년보다 0.7%나 떨어져 경기가 조금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경제기획원 통계국은 1년에 3, 6, 9, 12월 4차례에 걸쳐 전국 l만8천여가구에 조사원을 파견한다. 돈을 벌기 위해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은 모두 취업자가 된다.
한달30일 계속 일하는 정상취업자와 집안일이나 학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직장에 나가는 비정상취업자도 취업자 범위안에 들어간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단순히 수익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과 가족가운데 한 사람이 경영하는 일터에서 월급 없이 정상노동시간의 3분의 1이상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취업자에 포함시키고 있다.
실업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사람과 일시적인 병이나 직장대기 등의 이유로 구직활동을 못하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완전실업자다.
1만8천여 가구에 대한 취업·실업률이 나오면 이를 전국 가구수에 대한 비율로 확대해서 추정된다. 이것이 최종치이다.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 조사가 비록 ILO의 권고안을 채택하여 그 정의에 따르고 있으나 여기에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작년의 도시 경제활동인구는 9백50만8천명으로 80년보다 2.4%나 증가했다. 이에 비해 농촌은 0.6% 늘어났을 뿐이다.
도시부문이 많이 증가한 것은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등 대부분 영세한 소매업자와 포장마차 등을 이용한 음식업 등 불완전취업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심각한 불경기의 면면이기도 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ILO의 춰업·실업자 분류방법이 공업부문이 발달한 선진공업국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다는데 있다.
미국이나 영국·일본의 실업자는 대부분 제조업·서비스업 부문에서 나온 실업자며 이부문으로 다시 돌아갈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35.4%(81년)가 농촌 노동력으로 5백20만2천명이나 된다. 또 총취업자의 36.7%인 5백15만8천명이 농촌에 몰려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농촌 취업자속에 상당수의 실업자가 숨어있다. 이들은 겉으로는 분명 취업자이지만 농업생산성과 별다른 관련을 갖고 있지 않다. 위장실업자인 것이다.
농업국가에는 일반적걱으로 농번기에만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농촌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취업자」가 되고 이 때문에 실업률은 낮게 나타난다.
공업국가는 이러한 위장실업이 적기 때문에 실업률은 오히려 높게 나타난다.
79년 농업국가인 태국의 실업률이 겨우 0.9%였다.
아르헨티나는 2.8%, 한국은 3.8%. 이에 비해 공업국가인 미국의 실업률은 5.8%였다. 일본은 종신고용제의 특성 때문에 해고가 별로 없으며 실업률은 최근 7년동안 2%선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 실업률이 미국보다 낮다고 해서 경기회복이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든가 고용상태가 더 나아졌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실업률을 선진공업국과 비교할 때는 선진국의 전체실업률과 우리나라의 도시실업률만을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
80년 우리나라 도시실업률은 7.5%(농촌실업률 1.5%), 미국은 71%로 나타나 있다.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는 이른바 실망 실업인구가 숨어있다.
일자리는 찾아야겠는데 모든것이 마땅찮아 뾰족한 방안 없이 그렁저령 지내는 사람들이다. 81년말에는 이들이 63만2천명이나 된다. 정부는 이들의 취업의사표시가 뚜렷치 않기 때문에 실업자로 분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망실업자의 규모가 완전실업자와 맞먹을 만큼 크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망실업자의 내용을 보면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구직을 하지 않는 사람이 40만명(작년 9월기준), 구직하는 길을 몰라서가 6만1천명, 자격이 없어서 5만명 등이다.
여성인구와 청소년들의 취업힉망이 늘어나고 50대 중반 고령자들의 구직욕구가 더 커지면서 실망 실업자수가 증가하고 있다.
만약 66만여명의 완전실업자에게 오늘 당장 일자리가 마련된다고 해서 우리나라 실업률이 0이 되는 일은 없을것이다. 63만여명의 실망실업자가 또 완전실업자로 탈바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망실업자는 또 생긴다. 결국 실업통계는 빙산의 일각만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현재 정부의 고용정책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66만여명의 완전실업자다. 63만여명의 실망실업자는 정책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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