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금유치"지시|1∼3% 떼는게 관례|일부는 업무추진비로 쓰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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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정쇄신의 칼날이 시퍼렇던 작년초, 어느 애독자라는 사람이 본사경제부에 전화문의를 해왔다.
은행에서 대출(5백만원)을 받으면서 봉투(사례비)를 하나 건넸는데 받지를 않더라는 것.
『정말 서정쇠신 탓인지 사례비봉투가 얇아서인지 아무래도 꺼림직하다』는 내용이었다.
은행돈을 빌면서 봉투(커미션)를 건네는 것이 하나의 관행처럼 생각돼 왔다.
봉투를 건네는 사람이나 이를 받는 은행원이나 서로 크게 어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은행돈을 쓸 사람은 많고 은행돈은 그 욕구를 다 채울 수 있을만큼 넉넉지 못하다.
만성적인 초과수요현상.
따라서 이자를 꼬박꼬박 내는데도 융자금은 하나의 특혜처럼 돼 왔고, 이 특혜를 받는 사람은 감사의 표시를 해 온 것이다.
커미션의 액수는 일정치 않은 것 같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융자금의 0.7∼1.5% 수준으로 조사됐다. 융자규모가 큰 탓으로 커미션 비율이 작았던 것 같다.
알려진 바로는 융자금의 1∼3%쯤 된다 한다.
은행원이 커미션을 받았다해서 이를 몽땅 개인의 주머니에 챙기는 것은 아니다.
그중 일부는 예금고객유치를 위한 업무추진비로 쓰여왔다.
사실 큰 돈을 가진 전주들을 유치하려면 각종 접대는 물론 규정금리외에 웃돈을 얹어온 것이 우리네 관행이었다.
예금유치 목표가 정해지고 예금실적이 능력의 지표가 되어 심한 말로 웃돈을 주고 예금을 샀던 것이다.
단자회사의 경우 특히 심해 손 큰 사채업자와 돈을 꿔 갈 기업들이 사전 약속에 따라 단자회사는 중개기능만을 하고 사채업자는 규정금리외의 웃돈을, 단자회사는 중개수수료를 받아왔다.
70년대말 어느 은행장이 전국지점장 회의를 소집, 예금유치를 독려하면서 『유능한 지점장일수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금을 많이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지점장이 『그러자면 업무추진비가 부족하다』고 이의를 달자, 그 은행장은 『그건 각자 알아서 하라』고 답변했다.
커미션수수를 은행장들도 묵인한 셈이며, 오히려 예금유치를 위해서라면 권장한 꼴이다.
올부터 은행자율화의 일환으로 은행의 자금관리방식이 바뀌면서 은행예금유치경쟁은 한층 치열해 졌다.
이제는 예금을 얼마나 유치하느냐에 따라 대출규모가 정해지기 때문에 바로 예금확보량이 은행의 실적을 웅변하는 것이다. 은행장들이 큰 예금주를 잦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이 탓이다.
따라서 각 은행들은 업무추진비를 늘리고 기구를 개편해 일선 지점에 직원을 늘려주지만 은행원들은 업무추진비가 너무 적다고들 한다.
최근 은행서비스가 개선되고 부조리도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예금주에 대한 서비스는 많이 개선됐지만 대출부문에는 개선할 점이 여전하다.
사건이 터지자 어느 은행장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다. 2백개 점포, 1만명의 직원, 그것도 현금을 만지는 직원들의 사고를 막는다는 것은 큰 고역』이라고 실토했다. 그는 커미션관행이 근절된 것은 아니지만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라고 했다.
서회정의(이상)와 현실의 타협점은 어느 선일까?

<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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